매일신문

다문화 새댁들, 닭요리는 '나도 장금이'

결혼이주여성 16개팀 40명 치킨 음식 경연대회

'제1회 다문화가정 치킨 요리대회'가 3일 대구과학대학 실습실에서 열렸다. 한 팀이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를 만들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온 신경이 칼끝에 모인다. 위생모를 눌러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칼이 지나간 자리마다 얇게 썰어 넓게 편 당근은 꽃 모양으로 변한다. 양파를 다듬다 눈이 매워 얼굴을 찡그린다. 채 식지 않은 삶은 메추리알을 까느라 연방 귓불에 손을 대기도 한다. 토막 내 체에 밭쳐둔 생닭은 튀김 가루가 묻혀져 하얗게 변한다.

3일 오후 대구 북구 태전동 대구과학대 조리실은 영화 식객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대구북구시니어클럽 주관으로 제1회 다문화가정 치킨 요리 대회가 열린 것. 주인공은 치열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40여명(16개 팀)의 결혼이주여성들. 까무레한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을 한 이들은 요리만큼은 '내가 짱'임을 알렸다.

오후 2시 15분쯤 요리대회가 시작된다. '쿵쾅, 쿵쾅' 조리대마다 마늘 빻는 소리가 들린다. 정성스레 음식재료를 다듬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6개국에서 시집온 외국 새댁이 모인 탓에 조리실은 작은 지구촌을 방불케 한다. 기자가 다가서자 '신짜오'(안녕하세요)라고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찐티김응원(28)씨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요리 시작종이 울린 뒤 10분이 지나지 않아 조리실은 향긋한 냄새가 가득하다. 닭을 이용한 갖은 요리가 차츰 모습을 드러낸다. 콜라 닭 날개 조림, 닭 옥수수 찜, 닭 청경채 조림, 궁보계정 등 이름조차 생소하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요리 대회를 준비하면서 국적이 다른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이날은 고향 음식도 실컷 먹을 수 있다. 한 중국 결혼이주여성은 "닭 가슴살과 땅콩 맛을 살린 궁보계정은 다이어트 식품이어서 중국에서 인기가 대단히 많다"며 조리법을 상세히 설명한다.

아내와 며느리를 응원하러 온 가족들도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조리실을 기웃대던 이동만씨는 "요리 대회를 준비하면서 아내가 한국 생활에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것 같다"며 "베트남에서 온 아내가 꼭 입상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1시간 뒤. 태국, 베트남, 중국, 필리핀 전통 음식이 한상씩 차려진다. 심사위원들은 진땀을 뺀다. 요리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한 심사위원은 "음식맛이 손맛이라는 명언이 꼭 맞을 정도로 결혼이주여성들 모두가 정성을 다해 요리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음식이 너무 가지런하고 모양이 예뻐 먹기에 아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대구북구시니어클럽 유호종 관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요리 연습을 하고 대회를 치르면서 우애를 다지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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