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22>예천 용궁순대

도톰한 돼지막창 속 찹쌀 고두밥·12가지 야채…쫄깃한 식감 자랑

예천읍 자원봉사회 회원들이 이른 아침 예천사랑마을 김장봉사를 끝내고 출출하고 허기진 배를 용궁순대 국밥 한 그릇으로 채우며
예천읍 자원봉사회 회원들이 이른 아침 예천사랑마을 김장봉사를 끝내고 출출하고 허기진 배를 용궁순대 국밥 한 그릇으로 채우며 "용궁순대 맛있어요"를 외치고 있다.

도종환 선생을 비롯해 몇몇 작가들이 함께 쓴 '참 아름다운 당신'이란 제목의 책은 우리 사회에서 높은 지위나 권한을 지닌 사람들이 아닌, 세상이 몰라줘도 그저 자신들이 사는 지역과 동네와 고향 땅에 따뜻한 볕이 들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이 책에서 소설가 이명랑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떡볶이와 순대, 어묵을 파는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아주머니는 돈만 받고 그것들을 팔아넘기는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다. 때론 굶주린 아이들이 있거나 비통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언니처럼 대가 없이 퍼주기도 한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녀야말로 '순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버려진 돼지 창자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녀의 삶. 그러나 그녀는 그 보잘것없는 돼지 창자 속에 기쁨과 희망과 온기를 집어넣어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풍성하게 해 준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먹었던 건강식 '순대'

순대의 기원은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이 대륙 정복시 짐승의 창자에 쌀과 채소를 혼합해 넣고 말린 후 전투식량으로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6세기경 중국의 '제민요술'이라는 책에 양의 창자를 이용한 순대와 유사한 음식의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이미 순대를 만들어 먹은 것으로 추정되나, 주로 북쪽 추운지방에서 지방을 섭취하고 추위에 견디는 음식으로 많이 먹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순대의 기록은 다양하게 전해진다. '규곤시의방'과 '음식디미방'에는 개를 이용한 순대가 기록돼 있다. '규합총서'와 '증보산림경제'에는 쇠고기 창자를 이용해 꿩고기, 닭고기, 쇠고기 순대 제조법이 기록돼 있다. 또 '시의전서'에는 민어의 부레를 이용한 어순대와 오늘날과 같은 돼지순대 제조법이 전해 내려온다.

각 지역별 유명한 순대는 이북출신 실향민들이 고향음식을 그리며 만든 '아바이 순대', 서울의 신림동 '당면순대', 인천시 계산동의 옛 지명을 딴 '백암 순대', 유관순의 고향인 아우내 장터의 '병천 순대', 제주 전통 순대인 '수애'가 있다.

◆도톰한 막창의 쫄깃함 '예천 용궁순대'

예천군 용궁면 소재지에는 특별한 순대집들이 있다. 웬만한 순대는 소창이나 대창을 사용하지만 용궁순대는 '돼지 막창'을 쓴다.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가격이지만 살이 도톰하고 쫄깃해 순대의 씹히는 식감을 위해 막창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이곳에는 용궁순대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이 5곳 있다. 대부분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맛'을 찾아 나선 관광객들로 성업 중에 있다. 최근 들어 인근 회룡포마을과 삼강주막 등이 새로운 관광지로 인기를 얻어면서 덩달아 용궁순대 식당들이 붐비고 있다.

20여년 전부터 용궁시장을 중심으로 순대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용궁 지역에서는 예부터 잔치나 상례 등 큰일을 치를 경우 빠짐없이 손님상에 올랐던 음식이 '순대'였다. 몰려드는 손님들의 배를 채워주고 한꺼번에 장만해 보관해두기 수월했기에 순대는 잔치음식이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 손맛이 좋기로 이름난 여인네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잔칫집이나 상가로 불려 다니며 '순대'를 만들어 주었다는 말들이 공공연히 전해진다.

흥부네 순대집 김숙제(46)씨는 "아이 팔뚝만한 순대 몇 개와 머릿고기 몇 조각이면 든든한 한끼 식사가 되기 때문에 큰일 치르기에 적격이었다"며 "식당들마다 돼지막창을 사용하는 것은 똑같지만 만드는 것은 저마다 나름의 비법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한 달에 막창만 400~500kg 사용

용궁면 소재지 버스정류장과 농협 사이에 있는 '흥부네(토종한방)순대'는 마을 잔칫집 순대요리를 전담하다시피할 정도로 손맛이 일품이었던 황해옥(78) 할머니의 비법이 전수된 곳이다. 아들 이두화(55)·며느리 양옥자(49)씨 부부가 비법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곳 순대는 여느집과 마찬가지로 파·부추·고추 등 12가지의 신선한 야채를 사용한다. 찹쌀 고두밥과 선지로 버무려 순대속을 채워 넣는다. 급속냉동해 숙성시켜 느끼한 맛을 없애고 부드러운 느낌과 쫄깃한 막창의 식감을 더하게 한다.

막창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2가지의 한방재료를 사용하는 게 이 식당의 특징이다. 지금도 양념을 만드는 작업은 황 할머니가 직접 나선다. 혹여나 옛날 순대 맛을 잃지나 않을까 염려해서다.

이 식당 한곳에서만 한 달에 막창 400~500kg을 사용한다. 막창만큼이나 찹쌀도 수백kg이 들고 마늘도 40~50kg이나 사용된다. 매일 파 10단, 부추 5단, 고추 4kg 등 엄청난 양의 농산물이 재료로 들어간다. 이 모든 재료들은 용궁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한다. 계약재배하거나 밭떼기로 사들여 수확한 후 저장해 뒀다가 일년내내 사용한다.

이 식당 순대는 특유의 노린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이다. 부드럽게 씹히면서도 막창의 쫄깃함이 새롭다. 게다가 청양고추의 맵싸한 맛이 씹을수록 혀끝을 자극한다.

◆포장·규격·택배 등 산업화 필요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순대'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체들로 가득하다. 포장마차나 길거리 분식집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순대를 집에서 택배로 받아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전통 서민 먹을거리의 산업화시대다.

하지만 예천 용궁순대는 아직도 산업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인근 관광지와 연계된 맛집으로 이름나면서 용궁순대를 찾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지만 산업화를 위한 움직임은 전무한 실정이다. 자체 홈페이지를 구축하거나 택배판매를 위한 제품 규격화에 나서는 식당들도 없다.

창업컨설턴트 고영학 에이스라인 대표는 "순대의 산업화는 이미 상당부분 진행됐다. 안동의 버버리 찰떡 등 전통 먹을거리들이 전국 택배 등을 통한 산업화에 필요한 규격포장화, 냉장유통 등 개발로 새로운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했다.

고 대표는 '용궁순대' 경우 각종 언론 등을 통해 브랜드 홍보가 상당부분 진행된 이점을 살려 관광객들이 직접 찾지 않고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전국 프랜차이즈화를 시도해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통음식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imn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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