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룡 주유소' '착한 주유소'…마트주유소의 두 얼굴

구미의 대형소매점들이 운영하는 주유소에는 고객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인근 일반 주유소들은 고객이 한산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구미의 대형소매점들이 운영하는 주유소에는 고객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인근 일반 주유소들은 고객이 한산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구미와 포항에서 대형소매점이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기름값 파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싼 기름값을 반기고 있지만, 인근 다른 주유소들은 매출이 줄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며 아우성이다.

정부가 대형소매점 주유소를 통해 기름값을 인하하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주유소업계에선 주유소 간 출혈경쟁보다는 정유사 간 경쟁을 유도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형소매점 주유소, 싼 가격으로 공략

현재 구미에는 5월과 9월 문을 연 롯데마트주유소와 이마트주유소가 영업 중이다. 또 포항에는 6월 이마트주유소가 문을 열었다. 4일 오후 구미의 2개 대형소매점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반면 인근 일반 주유소는 한산했다. 이날 대형소매점 휘발유 가격은 ℓ당 1천548원, 경유는 1천348원으로 주변 주유소들보다 100원 정도 쌌다.

직장인 김광섭씨는 "매일 휘발유 가격이 다르지만 대형소매점 주유소가 주변 주유소들보다 보통 100원 안팎으로 싸다. 또한 대형소매점 직영 주유소여서 품질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대형소매점 주유소 관계자는 "50∼60ℓ정도 비교적 기름을 많이 넣는 대형차와 외제차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주유소 관계자는 "평일에는 2천여명, 주말과 일요일에는 2천200∼2천400여명의 고객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마트주유소 관계자도 "개업 초기에는 평일에는 하루 400대 정도 주유했으나 요즘은 800∼1천대 정도로 늘었다. 200ℓ짜리 100드럼 정도를 판매하는데 주말에는 이보다 20% 정도 더 판다"고 말했다.

◆일반 주유소, '죽을 맛'

구미에 대형소매점 주유소 2개가 들어선 이후 인근 주유소들은 물론 수km 떨어진 주유소들도 매출이 20~50% 줄었다. 대형소매점 주유소와 인접한 주유소의 곽시순 사장은 "대형소매점 주유소가 문을 연 이후 매출이 20% 정도 감소했다"면서 "우리는 그나마 화물차와 공단내 업체들의 외상거래 중심으로 하고 있어 타격을 덜 받지만 주택가 주변 주유소들은 많게는 절반 정도 매출이 줄었다"고 전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주말에 쇼핑을 나왔다가 한꺼번에 기름을 가득 채워 가면 일주일에 한 번 다시 쇼핑 나와 기름을 주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일반 주유소 중에는 주말 매출이 60∼70% 정도 줄어든 곳도 있다는 것.

구미의 주유소 업자들은 "처음에는 대형소매점 주유소에 맞서 가격인하를 했지만 곧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정유사에서 공급받는 가격이 있는데 마진을 보지 않고 출혈경쟁, 적자경쟁을 계속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마트주유소가 문을 연 이후 구미에서는 3, 4개 주유소가 매출이 급감해 문을 닫았다. 김진상 한국주유소협회 구미시지부장은 "대형소매점 주유소들이 나타나면서 일반 주유소들은 완전 '초토화'되고 있다"면서 "대형소매점 주유소들은 고객을 모으기 위해 정유사들로부터 구입하는 가격 또는 마진이 거의 없는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기름을 일종의 '미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일반주유소는 이들과 경쟁이 아예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정부는 대형소매점 주유소를 통해 인근 주유소들의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마진도 거의 없이 판매하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고 대형소매점 주유소들이 같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담합 의혹도 있다"고 지적했다.

◆'마트주유소' 놓고 갈등

이 같은 대폭적인 기름값 파괴현상은 비단 구미뿐만 아니라 포항, 통영, 용인 등 대형소매점 주유소가 영업 중인 곳은 다 마찬가지다. 순천, 군산, 울산 등지에서도 대형소매점 주유소 건립을 둘러싸고 일반 주유소업자 및 지방자치단체와 마찰을 빚고 있다.

대형소매점 주유소 영업을 통한 기름값 인하에 해당 지역 소비자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지만 그 부작용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의 한 주유소 사장은 "슈퍼슈퍼마켓(SSM)들이 동네 골목상권마저 초토화 시키듯 '마트주유소'도 중소도시 주유소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돈을 서울로 다 가져갈 경우 지역경제는 더욱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구미에서도 벌써 일반주유소들의 매출이 크게 줄자 주유소마다 종업원들을 1, 2명 줄이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대형소매점 주유소가 들어선 지역의 주유소 매출이 20~30% 줄어 들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형소매점 주유소는 이미 6개 문을 열었고, 연말까지 19개, 장기적으로는 60개까지 문을 더 열 계획이다. 이 때문에 대형소매점 주유소 허가 문제로 정부와 지자체가 대립하고 있는 곳은 천안과 울산, 양산 등 전국 10여곳에 이른다. 도명화 대한주유소협회 대구지회 사무국장은 "전국에 주유소가 1만3천여개나 되는 상황에서 고작 몇십개 마트주유소를 운영한다고 기름값 인하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면서 "정부가 진정 기름값을 인하할 의지가 있다면 주유소가 아니라 정유사들 간의 경쟁을 통해 가격을 인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름값 가격을 결정하는 정유 4사의 시장점유율이 98.5%인 독과점 형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소매점 주유소가 수십개 들어선다고 해서 기름값을 하락시키는데는 크게 작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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