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판화작업」/임석

원근법(遠近法) 구도를 펼친 돋을새김 산수화여

말고삐 몰아 쥐고 물웅덩이 늪을 지나 길 없는 길 만들며 힘들게 산등성이 넘어 간다 아, 눈 아래 밟히는 저 티끌 세상, 먼지 소음 오수로 뒤범벅된 아황산이 배출되는 공해의 바다. 들끓고 또 끓어 넘치는 그 바다에 쪽빛 물감 그득 풀어 놓는다 잠시 멈췄던 조각도 다시 들고 사흘 밤 낮 준령을 넘어 예각(銳角)의 금을 그어 가면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 노고단이 바로 저기로구나. 앙상한 뼈마디 나무들 녹색 옷 입히고 산물 소리 콸콸 쏟아내는 계곡, 웅숭깊은 저 계곡까지 숨결소리 들리는구나

그 아래 둥지를 틀고 살고 싶어 떠는 칼날

그림과 시의 접촉이다. 그림 속에서 상상력이 부풀면서 시적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시 속에서 그림의 상상력은 언어의 물질화를 통해서, 물질적 언어 사이의 길항과 접촉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조각도 다시 들고 사흘 밤 낮 준령을 넘어 예각(銳角)의 금을 그어 가면"이라고 시인이 언어의 조각도로 풍경을 새겼을 때 노고단은 바로 예각의 금으로 두텁게 새겨진다. 언어가 가진 물질적 힘이다. 그 힘은 쉽사리 말하자면 언어의 역사성과 우리의 경험이 섞여있는 상태이다. 언어가 가진 물질적 특성을 잘 이해한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다. 사물의 본성이란 사물의 외양과 일치하고 사물의 외양이야말로 사물의 본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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