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국회의원이 지역구에 내려오면 해괴한 풍경이 연출된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구의원이나 단체장 출마를 염두에 둔 인사들이 눈 도장을 찍기 위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저녁이 되면 '의원님'을 밥집'술집으로 모시고 대접하는 것은 기본이다. 좌중에서 국회의원은 '왕'처럼 떠받들여지고 '의원님' '의원님' 하며 면전에서 손 비비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주흥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국회의원은 밤마다 이 술자리 저 술자리를 떠돌고 있다. 한 지방의원은 "국회의원과 함께하는 자리가 귀찮지만 주위에서 모두 그렇게 하니 어쩔 수 없다. 돈을 달라면 돈을 주고, 뭐든지 하라면 하겠는데 아직까지 공천 언질이 없으니 더 답답하다"고 했다.
#2. 경북의 B국회의원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국회의원이 지역구 행사장에 나타나면 그 뒤로 양복 입은 도'시의원 6, 7명이 호위하듯 줄줄이 따라다닌다. 국회의원 본인은 권위가 설 것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주민들에게는 영 꼴불견이다. 주민들은 '어디에서 온 조폭이냐'며 가시 돋친 농담을 내뱉곤 한다. 그런 장면은 웃고 넘길 수 있지만, 문제는 그 국회의원이 해당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도의원'시의원의 공천권을 몽땅 쥐고 있는데 행정이든 사업이든 그가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몇 달 전에도 시의회는 주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지시에 따라 시청에 큰 부담을 주는 사업건을 통과시켰다. 주민 여론보다 국회의원의 의사가 더 중요한데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담기도 부끄럽다.
물론 국회의원 전부가 이런 것은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민원 현장을 누비는 국회의원도 얼마든지 있다. 한국 정치가 사석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국회의원 개인의 양심과 자질에 맡겨두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한나라당 공천=당선'을 뜻하는 대구경북에서는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제가 너무나 큰 폐해를 낳고 있다.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전국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주홍 강진 군수는 얼마 전 라디오 방송에서 "시장, 군수, 구청장을 만나보면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시간과 돈, 과잉 충성 세 가지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현행 정당공천제"라고 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볼 때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 행정구역 통합 논의가 활발할 당시, 속마음과는 달리 입도 벙긋하지 못한 지방의원들이 한둘 아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논의 자체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일부 학자들은 정당의 책임 정치 구현과 기초의원들의 정치 훈련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원론적으론 백번 지당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론일 뿐이다. 여야의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특정 정당이 장악한 지역에서는 씨도 안 먹히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공천 심사 강화를 통해 해결한다고 하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심사란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현재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을 위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가동 중이다. 벌써부터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물건너간 분위기라고 한다. 특위 위원들이 정당정치의 핵심은 공천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선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이 폐지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개정할 의사가 전혀 없다. 솔직히 국회의원들로선 지역구가 국회의원들의 '놀이터'와 같은 곳인데 굳이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독도를 포기하더라도 공천제는 포기 못 할 것'이라는 일부의 비아냥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정개특위가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를 그냥 넘어간다면 국회의원의 '놀이터'만 지켜줬다는 얘기밖에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정치를 보니 다가오는 연말연시가 우울해진다.
朴炳宣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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