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책과 예술] 그림이 그녀에게

『그림이 그녀에게』 곽아람 지음/ 아트북스 펴냄/ 1만2천800원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의 새로운 음반, 희생(Sacrificium)을 듣는다. 세계 최고의 메조소프라노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여가수가 이번 음반에서 부르는 노래는 카스트라토(Castrato)들의 것이다. 카스토라토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을 중세 교회가 잘못된 해석을 함으로써 여성의 교회안의 활동을 제한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가대에서 여성의 음역을 남자에게 맡기기 위해 변성기 이전의 소년을 거세하는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양산되었던 카스트라토는 그 잔혹성 때문에 사라질 때까지 1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바르톨리는 그녀의 음반 재킷을 자신의 얼굴에 남성의 몸을 한 사진을 합성함으로써 30만명 이상의 소년들이 종교음악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되었던 아픔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음반제목을 희생이라고 붙인 것도 그 수많은 카스토라토 가운데 우리에게 알려진 이들이 파리넬리(Farinelli) 카파렐리(Caffarelli) 콘티(Conti) 텐두치(Tenducci)뿐이라는데 있다. 신을 찬양하기 위해서 성을 거세당하고 이름 없이 사라져가야만 했던 소년들의 슬픈 운명을 그녀는 노래한다. 비록 지금은 훈련에 의해서 여성의 음역을 내는 카운터테너가 존재하고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잔혹한 역사는 결코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고 그녀는 항변하고 있는 듯하다.

곽아람의 『그림이 그녀에게』는 서른, 일하는 여자의 그림 공감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제목보다도 부제가 더 와 닿았던 이유는 바르톨리의 새 음반을 다시 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가 서른과 일하는 여자를 부제로 설정한 것은 어쩌면 아직까지도 일하는 여자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성숙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녀의 글은 이미 인생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보내버린 미혼의 여성이 가지는 사회적 불안과 존재의 각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녀의 홀로서기는 그림읽기를 통해서 때로는 힘겹기는 하지만 단단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가능한 한 일찍 결혼하는 것은 여자의 비즈니스이고, 가능한 한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남자의 비즈니스이다'라는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독설처럼 시니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감, 그리움, 위로, 휴식이라는 책의 주제처럼 그림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통해서 잔잔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림은 마치 지식의 산물이나 교양인 것처럼 포장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잘못된 교육의 효과이고 해서 작가의 방식처럼 그림을 해석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어찌 그림이나 음악이 지식이나 교양의 토대 위에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잘못된 지식의 해석이 희생을 낳듯이 예술의 해석이란 화석의 표본을 채집하는 작업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곽아람의 그림읽기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술은 아름답고 슬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책은 예술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바르톨리의 노래 또한 카스토라토의 슬픈 삶 속에서 이해될 때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여행작가 ㈜미래티엔씨 대표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