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남교의 일본어 원류 산택 53] 결혼과 인생(1)우찌(うち)의 뇨보(女房)

사람이 살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일생을 같이 살아가는 자신의 반려자가 아닐까? 그런데 나는 결혼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부인을 '여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왠지 쑥스럽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요즘은 자연스레 나오는 '여보'지만 이 '여보'는 부부 상호간에 서로 부르는 호칭으로 약간의 존경과 애정이 담긴 말이다. 그런데 '여보'가 일본어로 건너가면 '뇨보'(にょうぼう)로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정중하게 바뀌어 '부인'이란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남자가 자기 부인을 소개할 때 '와타구시노 뇨보데스'(私の女房です)라고 하는데 이는 '제 부인입니다'라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처럼 편하게 사용하는 '여보'에 해당하는 일본말은 없을까?

일본은 상호간에 존중하는 '여보'라는 말은 없다. 그래서 남편이 부인을 부를 때는 '미치코'(美知子)라고 이름을 부르든지 아니면 '오이'(おい) 즉 '어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인들은 결코 남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를 보더라도 일본이 우리보다 남성 우월주의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집에서 자기 부인의 이름을 '영숙아' 하고 부른다면, 아마 이를 듣는 사람들은 '부인을 낮게 취급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잘 쓰는 말이 '여보, 당신, 누구 엄마'인데, 일본어로는 '아나타'(あなた) 즉 '당신'이 고작이다. 그리고 부인을 소개할 때 '우리 집사람'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 사람들도 똑같이 '우치노히토'(家の人) 즉 '우리 집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치'(家)란 말은 '우리집'이 생략된 말이다. 결혼하기 전의 남자를 모난 각이 많다고 해서 '총각'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일본어로도 '쵸가'(ちょうが)라고 한다.

나는 총각 시절 결혼에 대해서는 퍽 자신을 갖고 있었다. 내가 원하면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주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나서 결혼하기로 작정하고 신붓감을 찾아다녔는데, 자기에게 꼭 맞는 사람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멋진 사람을 하나 발견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서울 제일의 미인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하고 뜻을 정했는데, 천만 뜻밖에 상대가 거절하는 게 아닌가? 어라, 이런 법도 있나?!

그로부터 3년반 동안 열심히 편지도 쓰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정성 어린 노력이 효력을 발휘해 드디어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이건 작은 것 같지만, 성인이 되어 나 스스로 결정한 최초의 사건으로, 인생의 출발점에서 나름대로 대성공(?)한 인생 일대의 사업이었다.

경일대 총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