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 문제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재벌 총수가 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최근 사면복권되었다.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스포츠가 자신에게 평화를 선물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 경우 스포츠는 핑계였을 뿐 평화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역사적으로 스포츠가 인류의 평화에 기여한 대표적인 경우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 제전경기를 들 수 있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하여 서기 393년 로마황제 데오도시우스에 의해 폐지되기까지 제전경기는 무려 1천169년간, 293회에 걸쳐 단 한차례의 중단도 없이 계속되었으며, 개최 기간은 물론 대회 전후 3개월 동안 도시국가 간의 평화가 철저히 유지되었다. 1896년 쿠베르탱에 의해 부활된 근대올림픽이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벌써 세 차례나 중단되었으니 고대 올림피아 제전경기야말로 고대인의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대장정이었다.
근래에는 스포츠가 정치와 연결되어 평화를 이끌어낸 경우도 있다. 6'25전쟁 이후 미국에 의한 경제봉쇄정책과 소련과의 영토 분쟁에 시달리던 중국은 이의 해결을 무력이 아닌 스포츠에서 찾았다. 1971년 3월 제31회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던 미국 대표팀을 중국으로 초청한 것이다. 이들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의 면담은 물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을 순방하며 친선 경기를 벌였다. 이듬해 2월에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는 스포츠가 냉전시대의 종식을 이끌어낸 외교사의 중대사건인 '핑퐁외교'로 상징되고 있다.
이외에도 스포츠 경기의 응원이 평화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장면은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에서 보여준 붉은 악마의 응원이었다. 외신들은 우리 축구의 4강 진출 못지않게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무장한 웅장한 응원에 놀라움을 표하며 깊은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스포츠를 매개로 하여 사회통합을 이룬 평화의 장이었으며,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신조어의 탄생과 함께 응원단이 객체가 아닌 능동적인 주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포츠는 이와 같은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69년 7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에 발생한 '축구 전쟁'이었다. 물론 양국간 분쟁의 근본 원인은 영토 확장을 둘러싼 국경 문제였으나, 과열된 축구 경기가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에 양국의 국교 단절은 물론 사흘간의 전투에서 3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는 검은 9월단으로 불리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대원들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습격하여 선수 11명, 무장단체 대원 5명, 경찰관 1명, 헬기조종사 1명 등 18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자행되었다. 이로 인해 이집트, 쿠웨이트, 시리아 등의 선수들은 보복이 두려워 더 이상의 경기에 참가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뮌헨올림픽은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민족주의적 대립이 폭발돼 얼룩진 대회로 영원히 기록되고 있다.
이 외에도 스포츠 경기에서의 응원이 폭력사태를 유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국에서 시작되어 독일, 이탈리아, 터키 등으로 확산된 훌리건이다. 화려한 경기 모습을 기대하고 열광하는 서포터스와는 달리, 훌리건은 자기 팀에 대한 몰입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나머지 과도한 충성심으로 변질되어 경기 내용보다는 오로지 자신이 지지하는 팀의 승리를 최고선으로 여긴다. 한때 훌리건은 애국심의 발로라는 의미에서 비호를 받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그들의 폭력성에 의해 사회병리현상의 극단적인 표출로 진단되고 있다.
이렇듯 스포츠는 가치중립적인 놀이에서 비롯되었다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평화를 선물하기도 하고, 어둠을 드리우는 판도라의 궤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스포츠가 표출할 수 있는 빛과 그림자를 인간이 어떻게 현명하게 인지하고 대처하느냐이다. 평화와 분쟁은 스포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선택되는 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김동규 영남대 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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