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호암 이병철 탄생 100주년]김재하씨가 본 호암은

"임금, 다른 곳보다 1%라도 더 줘라" 교육만큼은 엄격

"솔직히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제일모직에 입사하고 회사에서 좌변기를 처음 봤습니다. 당시 좀 괜찮은 시설에 가면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는 변기는 있었지만 앉는 좌변기는 없었거든요. 더 부끄러운 얘기를 하자면 좌변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좌변기 위에 올라가 쪼그리고 앉아 용변을 봤습니다. 한가지 더 털어놓을까요? 제일모직 화장실이 너무 깨끗해 저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야 하나를 고민하기도 했었습니다."

1972년 제일모직에 입사, 삼성맨의 길에 들어섰던 김재하(56) 삼성라이온즈 부사장은 호암이 직접 세웠던 제일모직의 '화려한 부대시설'은 대단했었다고 말했다.

"호암께서는 1년에 1번, 3월에 꼭 제일모직에 오셨죠. 호암이 제일모직 시찰에 나서는 날에는 모든 회사간부들에게 비상이 걸립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일이 꽃이나 나무이름을 외우는 것이었어요. 제일모직 설립 당시 호암이 직접 조경을 챙기셨으니 조금이라도 달라진 나무나 꽃이 있으면 호암은 꼭 이를 간부들에게 물었죠. 호암은 정말 아름다운 환경에서 직원들이 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침산동 제일모직 공장에 있을 때 살구나 앵두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따먹던 추억이 생생합니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침산동 제일모직에는 천연 잔디 축구장도 있었지 않습니까?"

김 부사장은 "호암은 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사원들에 대한 대우가 좋아야한다고 호암은 항상 말씀하셨죠. 같은 업종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1%라도 더 많은 임금을 줘야한다는 것입니다. 삼성은 실제 그렇습니다."

그는 호암이 직원들을 사랑했지만 교육에서만큼은 무서운 아버지처럼 엄격했다고 말했다.

"호되다고 생각할 만큼의 교육 프로그램이 삼성에는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을 만들어야하고 이를 통해 최고의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호암은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는 혹독한 교육 훈련 프로그램도 얘기했다. 동촌유원지 금호강을 맨발로 건넜고 한밤중에 화장장도 찾아가 담력을 키웠다는 것.

"금호강을 맨발로 건너다보면 신발과 양말의 고마움을 알게 되죠. 그냥 교육장에 앉아서 '신발과 양말'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강하겠죠. 지나고 보니 역시 교육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더군요."

김 부사장은 그렇다고 해서 호암이 임직원들을 돈 버는 교육에만 몰입시키지는 않았다고 했다. 먼저 사람이 되라는 것이 호암의 요구였다는 것.

"산꼭대기에 올라가 부모님을 부르라는 교육 명령이 떨어집니다. 얼떨결에 부르지만 자꾸 외치다 보면 아버지·어머니 얼굴이 떠오르지요. 지난날 불효도 죄스럽고 이제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그는 호암의 가르침이 삼성의 사람들을 인성을 갖춘, 그리고 도전적이고도 강인한 인재로 만들었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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