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와 함께] 119 화재·응급구조 출동 동행

불 안나면 그냥 쉰다고?…24시간 긴장·훈련 '열혈 소방관들'

기자가 화재현장 출동을 위해 뒷자리에 앉아 개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기자가 화재현장 출동을 위해 뒷자리에 앉아 개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소방호스를 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기자.
소방호스를 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기자.
기자가 출동하는 응급구조차량 안에서 이나영 소방사로부터 체내 산소량을 측정하는 시험을 했다.
기자가 출동하는 응급구조차량 안에서 이나영 소방사로부터 체내 산소량을 측정하는 시험을 했다.
동구 용계동 폐차장 실제 화재현장에서 기자가 소방호스를 들어주며 지원조로 나섰다.
동구 용계동 폐차장 실제 화재현장에서 기자가 소방호스를 들어주며 지원조로 나섰다.

'119소방관·응급구조사들이 얼마나 고생할까?' 답은 '헉'이다.

사실 막연하기만 했다. 실제 그렇게까지 힘들까. 불나면 불끄고,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지면 도와주고, 긴급상황에서 즉각 출동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고 뭐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아무일도 안 발생하면 대기만 하면 될 터이고….

이런 생각은 화재사고 출동 한번으로 여지없이 뒤집혔다. 기자와 사진기자는 화재현장에 출동해 좀 더 리얼한 사진을 찍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연기 몇 번 마시고는 두통과 현기증에 며칠을 두고 어질어질할 정도. 만약 실제 투입됐다면 모든 게 허둥지둥 금세라도 자기 몸도 추스르지 못해 병원에 실려갈 지경이었다. 산소 방독면조차 혼자서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막상 쓰고나니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11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동대구역 인근 동부소방서 119안전센터와 구급대에서 대기하며 소방관들과 응급구조사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호흡을 맞추는지, 어떤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지 체험해봤다.

◆'가보자', 용계동 폐차장 화재현장

119 구조대에서 '오늘 뭐 별거 없나보네'라며 취재가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차에 출동을 요구하는 벨소리와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후 4시 35분. 용계동 대동종합폐차장이란다. 취재차 온 기자는 응급구조차량에 탑승했다. 소방장 배준원(15년차)·소방교 도건우(9년차)·소방사 겸 응급구조사 이나영(신입 1년차) 3명이 한조가 돼 타고 있었다. 이 소방사는 "인명피해가 없으면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소방사에게 '이 직업이 적성에 맞느냐'고 시시콜콜 물어보기도 하고, 응급구조차량에 실려있는 각종 의료기구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 소방사는 기자에게 체내 산소량을 측정하는 기기를 시범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다 10여분이 지났고, 화재현장 인근에 도착하자 검은 연기와 붉은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아차! 장난이 아니네. 큰불이다'.

현장에 도착과 동시에 소방차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휘조, 차량지원조, 불끄는 현장투입조가 적재적소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진화에 나섰다. 불은 가장자리부터 중심부로 점점 사그라들었고, 인명피해가 없음도 확인됐다. 기자는 불이 거의 진화될 무렵 현장투입조를 돕기 위해 소방호스를 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웬 걸. 유독성 연기를 한 모금만 마시자 허둥댔고, 소방관들의 만류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폐차장 펜스를 뚫고 들어가 불 바로 앞에서 진화하는 소방관들이 '정말 브레이브 맨(Brave man·용감한 사나이)이구나' 다시보게 됐다. 1시간 정도 만에 화재는 완전 진압됐다. 기자는 철수하는 차안에서 "연기 마셨을 때 돼지고기가 좋으냐"고 엄살을 피웠고, 소방관들은 정말 우스운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죠"라며 흘려들었다.

◆하루 평균 10건 정도 '출동'

동부소방서는 119안전센터와 구조대 그리고 행정부서로 나눠어져 있다. 현장출동은 119안전센터와 구조대가 책임을 지고 있다. 출동은 119 중앙통제센터에서 방송이나 통신을 통해 알려준다. 3교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틀은 주간, 이틀은 야간, 이틀은 비번이다. 주로 야간근무가 힘들단다. 당연할 터. 야간에 취객난동, 유흥주점이나 모텔 화재 등이 더 잦기 때문. 또 밤에 응급환자도 많이 발생한다.

119안전센터는 65명, 구조대는 대장을 포함해 22명이 3교대로 근무한다. 119안전센터는 신천 1·2·4동, 효목 1·2동, 신암 1~5동 5만3천 가구를 관할하고 있다. 구조대는 동구 전체 관내를 관할하고 있어 팔공산 산악구조까지 담당하고 있다. 출동은 하루 평균 10여건. 많은 때는 20건에 달한다. 사고는 예측 불가. 인명사고부터 집 열쇠 따주는 일까지 천차만별이다. 혼자사는 노인들이 위급할 때도 자주 출동해 도움을 준다.

이날 근무를 맡은 조대용(21년차)·나일광(23년차) 소방장은 "출동을 하지 않을 때는 도상훈련(지도상에 모텔, 주점, 노래방 등 다중이용업소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을 하며 장비점검을 하는 등 항시 출동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특히 연차가 어린 소방관들은 도상훈련을 통해 지리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일과"라고 말했다.

이어 나 소방장은 "다양한 형태의 일들이 예고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선배의 조언도 도움이 되며, 스스로 응급상황에서 대처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이영훈(10년차) 소방교와 이창호(6년차) 소방사는 출동하지 않을 때 소방차 내의 호스, 로프, 라이프라인 등 각종 장비들을 챙겨보고 있었으며, 틈틈이 기자에게 방독면 쓰는 법, 소방호스 쏘는 법을 가르쳐줬다.

◆각양각색 사연들, '허탈, 안타까움'

세상에는 별난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아도 고생하는 소방관들에 허탈감과 안타까움을 던져주는 사건이 수월찮게 발생하고 있다. 소방관들은 하나같이 "아무 일도 발생않고, 가능하면 출동을 적게 하는 게 좋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각양각색의 사건들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들이 소개하는 사연 #1. 지난 금요일 새벽 4시 긴급전화가 왔다. 전신쇠약으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연락이 와 출동했는데 인근 파티마병원이 아닌 자신이 다니던 가톨릭대학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해 가는데 갑자기 "우리 집이 홈플러스 근처인데 그리로 가면 안되겠느냐"고 했다. 알고보니 택시비가 없어 119응급구조 차량을 택시처럼 이용하려 한 것. 그렇게는 안 된다며 가톨릭대학병원으로 데려가자 또 한번도 진료한 기록이 없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응급구조팀은 "우리가 뭐 택시기사도 아니고…"라며 말문을 닫았다.

사연 #2. 지난해 12월 동구 신서동 6층 건물에 한 남자가 올라가 자살소동을 벌였다. 구조대는 출동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회유했지만 이 남자는 "내가 돈많을 때는 그렇게 주변에 사람들이 많더니 돈이 없으니 아무도 없다"며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일부러 안전장치가 없는 곳으로 뛰어내려 현장에서 즉사했다. 구조대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구조대에 근무했던 베테랑 탁상균(17년차), 이진(15년차) 소방장은 "구조대원들은 대부분 특수부대 출신이고 극한 상황에서도 대처능력이 뛰어난 편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다"며 "산악구조하러 새벽에 출동했는데 집에 도착한 뒤 연락도 안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들의 고생, 누가 알까"라는 말을 남기고, 119동부소방서 체험을 마쳤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