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꿈이 가수였는데 40대에 꿈을 이룰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병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병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방영숙(46)씨는 5년 전 자주 하혈을 했다. 동네 의원을 찾았다가 의사가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3차례의 검사 뒤 의사는 '자궁경부암'이라고 진단했다. 의사의 말을 듣자 남동생이 생각났다. 남동생도 2004년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주 늦게 발견해 수술도 하지 못했다.
"남동생이 세상을 떠나던 날이 떠오르더군요. 얼굴과 손, 발을 닦아주고 욕창이 생긴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동생은 부모님을 잠시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걱정하실 부모님을 생각해 저의 병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2005년 1월 영남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초기에 발견돼 다행이었다. 자궁경부암은 1기 초반에 치료할 경우 5년 후 생존율 100%도 가능하다.
방씨는 수술 뒤 반신욕을 꾸준히 했다. 1주일에 2, 3번 1시간씩 했다. 몸이 편안해지고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것 같았다. 담당 의사는 방씨에게 음식을 골고루 잘 먹으라고 했다. 그는 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을 꾸준하게 먹고 자극성 음식은 피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등산을 하면서 체력도 보강했다.
암은 방씨의 체질을 바꾸었다. 수술 뒤 잔병치레가 많아졌다. 면역력이 약해져 감기는 해마다 달고 산다. 건강하던 체질도 알레르기 체질로 바뀌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즉시 반응이 나타난다. 얼마 전에는 복어를 먹었다가 호흡이 곤란해져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예전에 잘 먹었던 홍어도 이젠 알레르기 반응 탓에 먹을 수 없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알레르기 약을 항상 갖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병마와 싸우면서 정신은 더 건강해졌다. 투병을 도운 봉사활동과 음악은 방씨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만들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2004년부터 영남대병원에서 봉사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격주로 날을 정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귀와 눈이 어두운 어르신 환자들이 진료를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동생이 암으로 죽었기 때문에 모든 환자들이 가족처럼 여겨졌습니다."
방씨는 지금까지 500시간의 봉사시간을 기록했다. 봉사활동 중 걸린 암은 자원봉사에 더욱 힘쓰는 계기가 됐다. 암 수술 기간에만 잠시 쉬었을 뿐 투병기간에도 봉사를 꾸준히 계속했다.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수술 뒤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주위에서 소질 있다는 얘기도 자주 들었지만 정작 음악을 제대로 배운 건 처음이었다.
"새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촌각의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실천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방씨는 요즘 요양병원과 양로원 등에서 음악공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색소폰을 불고 노래를 열창할 때 어르신들이 보내는 손뼉과 '앵콜'은 그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준다. 지난해 10월에는 주위의 도움으로 음반을 내고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규리라는 가명으로 본격 활동을 하고 있다.
"음반을 내고 정식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가수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연주 봉사활동은 평생 할 작정입니다. 수술 뒤에는 암 재발 공포로 겁이 났지만 지금은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재발하더라도 수술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여유있고 느긋하게 반응합니다. 병에 걸려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품고 있는 꿈과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병과 싸우는 의지력이 생기고 행운도 찾아올 것입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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