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판 제프 베조스 비견 이상규 인터파크INT 대표, "대구는 인적 자원 우수"

성장성이 큰 문화산업에 지속투자한다면 대구 미래는 밝아

"세계시장의 주요한 트렌드이자 성장성이 큰 문화산업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대구에) 밝은 미래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온라인 쇼핑·도서·엔터테인먼트·투어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인터파크INT의 이상규(44) 대표는 대구의 미래에 대해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구는 우선 우수한 인적 자원이 많습니다. 제가 2004년에 인터파크 콜센터를 대구에 설립한 것도 단순히 고향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는 이상규 대표는 세계시장의 주요한 트렌드이자 성장성이 큰 문화산업에 관심을 갖고 대구가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밝은 미래가 있다고 자신한다.

인터파크INT의 이상규(44) 대표는 국내 대표적 e-커머스(전자상거래) 전문가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6년,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알아보고 현 인터파크 이기형 회장과 함께 국내 첫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를 설립했던 것. 때문에 미국 '아마존' 설립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에 비견되기도 한다.

"첫 직장은 증권회사였는데 공군장교로 병역을 마친 뒤 데이콤으로 옮겼습니다. 그때 이 회장을 만나 인터넷 쇼핑몰사업에 뛰어들었죠. 아마존이 1995년, 이베이가 1997년 문을 연 것을 보면 세계적으로도 앞선 시장개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1997년 데이콤에서 자회사로 분사한 직후 외환위기를 만났다. 하루 매출은 수십만원에 그쳤고 직원 월급도 줄 형편이 못 됐다. "제가 창업한다니까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냐며 격려해줬던 아내도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집은 물론 결혼반지 같은 돈 될 만한 물건은 죄다 내다 팔아야했거든요. 우리끼리는 차라리 지하철에서 파는 게 낫겠다며 자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전자상거래 시장에 대한 재무적 투자자들의 믿음 부족이었다. 비록 1999년 코스닥 등록을 하면서 해결됐지만 경영자금 조달을 위해 명동 사채업자까지 찾아 다녀야 했다. "인터파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사업 모델을 제시하고도 시장을 석권하지 못한 건 아이디어만 있었기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선점효과를 못 누린 거죠. 이베이나 아마존만큼 성공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그의 뼈를 깎는 노력 덕분에 인터파크는 첫 출발 때 14명이었던 직원이 현재 1천200여명, 지난해 거래총액이 1조5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견실히 성장했다. 특히 올해는 전자책(e-북)사업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LG텔레콤과 데이터 네트워크 제공 협약을 맺고 2월 중으로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전자책이 활성화되지않은 건 콘텐츠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선 지난해 크리스마스때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더 팔렸을 정도로 시장이 큽니다. 전용 전자책 단말기를 통해 싼 가격에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게 되면 1년 뒤에는 그야말로 블루오션이 될 겁니다."

'대한민국에도 정말 훌륭하고 멋진 회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며 신시장을 개척해 온 그는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CEO다.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기업가 정신과 열정을 전수하는 특강도 자주 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소탈한 면이 많다. 온라인사업 특성상 30대가 대부분인 회사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넥타이는 경조사에 갈 때만 맬 정도다. 약속이 없는 날은 자정이 넘을 때까지 퇴근을 미룬 채 사업 구상에 몰두하기도 한다.

휴머니스트라는 평가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서울대 국제경제학과)을 전공했고요. e-커머스사업도 우리를 편리하게 해줄 뿐 아니라 유통단계를 줄여 싼 값에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제공해주는 장점이 큽니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사재를 털어 경기도 용인시에 사립 공공도서관인 '느티나무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오는 3월에는 휴대전화로 인터파크그룹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모바일 커머스사업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정작 그는 '컴맹' '폰맹'이다. 휴대전화도 '사업을 위해' 최근에야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언뜻 '디지털 노마드' '얼리 어답터'일 거라는 선입견과는 꽤 다른 모습이다. '기계는 기계일 뿐 사람이 중심'이라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그는 지역의 미래에 대한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대구는 우선 우수한 인적 자원이 많습니다. 제가 2004년에 인터파크 콜센터를 대구에 설립한 것도 단순히 고향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세계시장의 주요한 트렌드이자 성장성이 큰 문화산업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밝은 미래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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