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올 초부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15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남한 당국이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을 수립했다고 하여 초강경한 대변인 성명을 내놓았다. 성명은 청와대를 포함하여 "남조선 당국자들의 본거지를 송두리째 날려보내기 위한 거족적인 보복 성전이 개시될 것"이라고 하면서 "온 민족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는 한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조선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앞으로의 모든 대화와 협상에서 제외된다"고 협박하였다.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의 대변인 성명은 이번이 처음이나 매우 치밀한 전략적 의도가 엿보인다.
북한은 강경 모드로 급선회했다. 이번 국방위 차원에서 기획된 협박성 성명은 남한이 마련했다는 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대미, 대남, 대내 차원에서의 상황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전략구상의 일환이라고 하겠다.
첫째, 대미전략 차원에서 북한은 핵보유 전략 방침을 굳혔다. 북한은 올 초 평화협정 체결을 대미전략의 최대 목표로 부각시켰다. 11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전쟁발발 60주년이 되는 올해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회담을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제의했다. 그와 함께 '선 유엔제재 해제, 후 6자회담 복귀' 주장을 밝혔다. 이처럼 북한은 '선(先) 평화협정, 후(後) 비핵화'를 선언하였다. 선 평화협정 주장은 북한이 비핵화 의무를 회피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제의를 '당장' 수용할 리는 없지만 일단 공을 미국 측에 넘겼다.
사실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는 북한 비핵화 진전에 따라 논의하기로 '9'19 공동성명'에서 이미 합의한 사안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비핵화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신뢰가 축적되면,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평화체제 협상을 가지기로 합의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느닷없이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두말 할 나위 없이 비핵화 '지연-거부' 전략일 뿐이다.
국방위 대변인 성명에는 대미 비난이 자제되었다. 그와 달리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추구하지만, 남한을 배제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평화협정 문제가 논의될 경우 새삼 당사자 논리를 들고 나올 수 있음을 예고한다.
둘째, 대남전략 차원에서 국방위는 올 상반기에 강경 드라이브로 협박과 위협 수준을 높여가면서, 중'하반기에 상황 반전을 유도하여 남한으로부터 대대적인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심산이다. 요근래 북한은 지난해의 대남 유화적 태도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쪽으로 자체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올해는 '판을 세게 벌리고, 크게 먹겠다'는 타산일 수 있다. 이는 3년차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국내정치적 문제로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을 서두를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측면도 없지 않다. 더욱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미 메시지로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국면 조성은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다. 말하자면 양수겸장인 셈이다.
셋째, 대내적 측면이 주목된다. 북한은 지금 '시장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말에 밀어붙인 시장타도 논리인 화폐 개혁으로 물가가 널뛰기를 하면서 사회적 불안과 동요가 확산되고 있다. 이를 당장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뿐만 아니라 후계자 구도를 안착시키는 데에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마저 예사롭지 않다면 모든 전략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 특히 체제압박 문제가 대내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면 대남전략 측면에서 강경 노선은 불가피하다.
국방위의 각본대로 나간다면 '적절한 수준'의 대남 무력도발 카드를 꺼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 국방위의 성명이 단순한 엄포용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지금 북한 당국자들은 현실을 차분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한의 의도대로 북한이 따라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한도 국방위의 대남 위협에 쉽사리 굴복하거나 호락호락 끌려갈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 당국의 오판에 따른 무모한 선택은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은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보다 '실리적' 태도로 나올 필요가 있고,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남한은 하루빨리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고 오해를 해소시키기 위해 물밑교섭을 서둘러야 한다.
조 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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