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방과후 시간표에는 월요회의 시간이 있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한 주간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시간이다. 재미없는 시간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자기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발언권은 교사와 아이들 모두에게 있다.
작년 봄 일이다. 3학년 시훈이가 책을 보고 나서는 "토토로 알에서 병아리 부화하는 거 보셨어요?" 하고 물었다. "아니, 텔레비전에서만 봤지. 실제론 못 봤는데." 그러자 시훈이는 "책에서 보니까 집에서 알 부화시키는 부화기라는 게 있던데요" 하고 말하는 것이다. "부화기? 그거 큰 거 아냐?" 하고 물으니 시훈이는 "작은 크긴데, 방과후에 해보면 안돼요?" 하는 것이다. "음. 나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니고 회의를 해봐야 알겠는데, 네가 안건을 내라." 이렇게 시작된 부화기 사건은 한동안 방과후를 떠들썩하게 했다.
사실 2년전 방과후에는 닭 두 마리와 오리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동네에서 닭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수탉들은 시골로 보내고, 암탉과 오리만 남게 됐다. 정성 들여 키우면서 달걀을 얻는 재미가 쏠쏠했고, 아이들도 동물을 키우면서 모두 좋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조류독감이 발생해서 난리가 나는 바람에 우리가 키우던 닭과 오리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건강했는데, 주위 어른들은 걱정이 앞서서 문제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구청에 신고도 하고 동사무소에서 소독하러 나오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닭과 오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과 교사들은 실망이 무척 컸다. 다시는 방과후에 동물을 키우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월요회의에서 병아리 부화기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집중했다. 아이들이 찬성 의견을 표시하며 병아리 부화기를 사서 키우면 생겨나는 좋은 점을 말했다. "병아리 키워서 알 낳게 하면 좋잖아." "병아리 귀엽고 이쁘잖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다. 반대하는 쪽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니까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들이 얼마 못 살고 죽는 거 보니까 마음이 아팠어." "조류독감 때 우리가 키우던 닭 없앤 기억이 나서 싫어." "부화기 비싼 거 아냐?" 이렇게 의견이 오가고 나니 남자 아이들은 찬성 입장이고 몇몇 여자 아이들과 교사들은 반대 입장에 서 있었다. 결론이 나지 않은 가운데 시훈이를 비롯한 남자 아이들에게 방과후 아이들 과반수 이상의 찬성 서명과 대책을 가지고 와서 다음 주에 회의를 다시 하자고 했다. 그 한주 동안 과반수 표를 얻기 위해 여러 아이들을 설득했고, 부화기 사는데 자기 용돈에서 오백원을 보태겠다고 다짐한 아이들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막판 회의에서 부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쏟아 부은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경험해본 아이들은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안다. 어른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자기 의견을 말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보는 경험을 가지는 일은 아이들 삶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김병현(공동육아 방과후 전국교사회의 대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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