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을 폐허로 만든 규모 9의 강진은 문명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자연재해로 평가된다. 지진은 그해 11월 1일 가톨릭의 최고 축일인 만성절(萬聖節) 오전 9시 30분에 일어났다. 뒤이어 강력한 해일과 화재까지 덮쳤다. 이로 인해 리스본에서만 적게는 1만5천 명, 많게는 6만 명이 죽었다. 모든 성인을 기리는 축일에, 그것도 사람들이 성당에 모여 기도하고 있는 시간에 일어난 재앙을 리스본 사람은 물론 전 유럽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신성한 하느님의 계획 어디에 이런 재앙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자비로운 하느님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폐허에 깔려 죽게 하고 성난 파도와 화마로 죽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슨 목적으로? 그것도 신앙의 도시인 리스본에 왜 그런 재앙을 내리셨을까?
당시 유럽사회는 '하느님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해볼 수는 있다'는 라이프니츠 류의 낙관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고통과 비극, 전쟁의 망령, 기아, 전염병, 그리고 자연재해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전체 속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 누구도 하느님의 계획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성의 힘으로 자연현상과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선은 필연적으로 악을 누르고 승리한다. 계몽주의자들은 이런 논리로 신앙과 이성을 화해시켰다."('운명의 날' 니콜라스 시라디)
리스본 대지진은 이런 생각을 산산조각냈다. 이 지진을 계기로 볼테르, 칸트, 루소 등 유럽 당대의 지식인들이 신의 섭리로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낙관주의와 결별했고, 계몽사상과 과학적 사고방식이 유럽 전역의 사회 전 계층으로 전파됐다. 이제 신의 섭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리스본 대지진은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다.
200년 만의 강진이 할퀴고 간 아이티는 국가기능이 붕괴됐다. 혼자 힘으로는 재난을 헤쳐갈 수 없다. 결국 아이티의 현재와 미래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좌우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티 대지진은 '인류의 양심을 시험하는' 재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훗날 사가(史家)들이 아이티 대지진에 대해 "세계는 인류애를 확인하고 실천했다"는 문명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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