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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랴 이랴" 안동판 워낭소리…"짐승이 아니라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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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판 '워낭소리' 주인공 20살 누렁이 화제

전 국민을 감동시켰던 '워낭소리'를 닮은 팔순노인과 누렁이 황소가 안동 산골마을에 살아가고 있어 화제다.

안동 북후면 소재지에서 꾸불꾸불한 산길과 강길을 따라 5km쯤 거리에 자리한 연곡리 끝자락 종실(終室)마을. 이 마을 정봉원(86)·강남순(81)씨 부부 집에는 정 노인의 가장 가까운 친구며 경운기와 승용차를 대신하는 누렁이가 함께 살고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이지만 이 누렁이는 스무 살이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101세쯤 됐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 누렁이는 '백세 청춘'을 뽐내듯 건강한 상태다. 정 노인은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함께 살 수 있을 게야. 내 건강이 문제지. 내가 먼저 죽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정 노인은 30여년 전 지병을 앓던 큰 아들을 먼저 떠나 보냈다. 그리고 두 딸마저 그 뒤를 따라 떠나 보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삼키며 땅을 일구던 즈음에 정 노인과 누렁이가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이랴 이랴'하는 정 노인의 호통소리와 '음메'하는 누렁이의 울음소리뿐이지만 둘만의 정을 주고 의지하며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가 됐다.

무뚝뚝한 정 노인과 무덤덤한 누렁소, 이 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지낸다. 아침 동이 틀 무렵 누렁이의 '음메' 소리와 목에 걸린 '워낭'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정 노인은 볏짚과 사료로 누렁이에게 아침을 먹인다. 정 노인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마솥에 볏짚과 왕겨, 등겨 등을 넣어 삶아낸 여물을 끼니마다 누렁이에게 먹였으나 건강이 나빠져 생볏짚을 먹이는 게 못내 미안한 마음이다. 이런 정 노인의 마음을 아는지 누렁이의 먹성은 나이를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누렁이의 하루는 땔감 실어 나르기부터 시작된다. 정 노인은 누렁이 목에 '에넹기'(멍에·쟁기 따위를 끌 때 소의 목에 얹는 물건)를 씌우고 등에 '지르매'(길마·짐을 실으려고 소의 등에 얹는 안장)를 얹는다. 달구지를 끌기 위해서는 멍에와 길마를 채비해야 한다.

봄날 농사철이 되면 누렁이는 1만여㎡(3천여평)의 밭을 도맡아 쟁기질로 갈아 엎고 거름을 실어 나르는 등 온갖 궂은 농사일을 다 해낸다. 누렁이는 밭일을 마치면 지쳐 잠든 정 노인을 실은 채 달구지를 끌고 집을 찾아가 외양간에 들어갈 정도로 마을에서는 이미 '혼자 다니는 소'로 알려져 있다.

가을 수확이 끝나고 겨울까지는 매달 2차례 열리는 옹천 장날 정 노인과 함께 장구경에 나선다. 달구지에는 쌀이며 콩, 건고추 등 내다 팔 물건들을 가득 싣고 2시간여 거리를 쉬엄쉬엄 떠난다.

6·25전쟁 당시 마을에서 수십명이 참전했으나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정 노인은 다리가 불편하다. 이 때문에 누렁이는 정 노인이 수십리길 떨어진 읍내 구경길에 없어서는 안 될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 노인은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면 다 알아. 그놈 눈빛이나 음메 소리를 들으면 배가 고픈지, 힘이 드는지 알지"라 한다. 정 노인은 "농사일이 없다고 집에서 놀리기만 하면 금방 쇠약해져. 사람이나 가축이나 꿈적대야 해"라며 장날구경을 핑계로 움직일 거리를 만든다고 한다.

이 둘의 사연은 지난해 산약축제 때 북후면장의 초청으로 지역 전체로 알려져 잔잔한 감동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연곡1리 정진용 이장은 "앞으로 어르신이나 누렁이가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지낼 수 있기를 주민들이 바라고 있다"고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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