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책속 심리]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 /에드가 앨런

끝내 내용 안알려주는 '비밀편지' 인간 무의식 영역 해독 나서야

'세상에는 밝혀지기를 거부하는 비밀들이 있다'는 포의 글처럼, 그의 삶과 죽음은 미스터리로 가득했다. 그는 한 살도 채 되지 않아 부모를 여의고, 허기진 사랑을 술과 아편으로 채우며 창작에 몰두했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심각한 알코올 금단증상을 보이다가 아버지의 고향에서 지친 육신을 눕혔다.

지난 60년 동안 포의 생일인 1월 19일이면, 정체불명의 참배객이 포의 묘지를 찾았다고 한다. 술꾼의 아들로 태어나 술로 세상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를 위로하듯, 그는 꼬냑 한병과 장미 세 송이를 두고 갔다. 술과 장미, 포의 일생을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표현할 단어가 또 있을까.

'도둑맞은 편지'는 살인사건 대신 편지 도난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간악한 계략가이자 정치가인 D장관이 왕비의 비밀편지를 훔쳐가면서 시작된다. 도둑맞은 편지로 인해 곤경에 빠진 왕비는 파리 경시청장에게 수사를 의뢰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사설탐정 뒤팽에게 의뢰한다.

편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편지꽂이에 허술하게 꽂혀 있었다. D장관은 과감하게 단순성으로 승부를 걸었고, 그의 의도를 간파한 뒤팽에게 당하는 대반전으로 끝이 난다. D장관과 뒤팽의 이름은 둘다 D로 시작하고 있어서, 도둑이나 탐정이나 한 인간의 양면일 뿐이라는 암시일까.

'악인이 낮에 한 일을 선인은 밤에 할 뿐이다.'

미국의 가장 보수적인 주에서 포르노 시청률이 가장 높고, 유명한 자선사업가가 자기집 가정부에게는 인색하다.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이중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포는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있는 인간의 사악한 욕망을 여지없이 들추어내었다.

그 비밀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 정말 궁금증이 들지만 편지의 내용은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은 편지 내용처럼, 우리의 마음에는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무의식이라는 영역이 있다. 거기에는 사랑한 사람이 보낸 편지도 있을 테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자의 것도 있으리라. 수취인불명으로 남은 편지는 가끔 우리에게 전보를 치듯 메시지를 보내온다.

탐정이 도난당한 편지를 찾아주듯, 정신치료자는 환자의 무의식이 친 전보 내용을 해독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뜯지 않은 편지가 마음에 쌓여 갈수록 사는 게 재미가 없다. 해괴한 꿈을 꾸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말 실수로 난감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때론 결코 밝혀져서는 안 될 비밀이 피할 수 없이 밝혀지기도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억압될 수밖에 없어서 병이 된 것도 있다. 편지를 개봉하여 읽어보자. 박하사탕처럼 알싸한 기억이 무료한 삶에 큰 활력을 가져다줄 것이다.

마음과마음 정신과 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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