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30) 봉화 닭실한과

500년 내림 손맛 고스란히 살린 수작업…브랜드 경쟁력 전국 으뜸

민족 최대 명절의 하나인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해를 맞는 새로움과 설렘, 한 해 동안 감사의 정이 오고간다. 특히 서구의 맛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에겐 떡국과 한과 등 전통음식을 맛보고 윷놀이 등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오랜세월 전통과 품격을 이어오고 있는 '한과'(韓菓)는 설 명절 먹을거리로 제격이다. 한과는 전국의 마을과 문중마다 전해내려오는 전통제조법에 따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때문에 설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한과의 맛과 모양새에 따라 집안 여인네들의 품격이 결정되기도 한다.

햄버거, 피자, 치킨 등 날이 갈수록 우리의 맛이 사라져가는 '전통 입맛 상실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과는 고향의 추억과 어머니의 손맛을 전해주는 '향수의 먹을거리'가 되고 있다.

◆500년 전통의 맛 이어오는 '봉화 닭실한과'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에는 500여년을 이어온 안동권씨 충재 권벌 문중의 한과가 생산된다. '닭실종가 전통유과'라는 간판을 내건 이 마을의 한과는 문중 며느리들이 모진 시집살이 동안 종가의 손맛을 고스란히 담아낸 내림음식으로서 전국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명품 한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곳 한과는 찹쌀 반죽에 멥쌀 가루를 입히고 기름으로 튀기고 조청을 입혀 깨를 두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충재 선생의 며느리 18명의 섬세한 손길로 이뤄진다. 한과는 제사를 비롯해 결혼, 회갑연 등 집안의 대소사에 어김없이 올려졌던 음식이었기에 500년 전통의 내림 손맛을 살려 정성스레 만들어낸다.

'닭실한과'는 조선 중종 때부터 시작됐다. 중종 때 사화에 연루돼 삭탈관직 당해 낙향했던 충재 선생이 선조대에 이르러 복권되고 영원히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불천지위'에 오른 후부터다. 이 마을 한과는 제사음식 가운데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깃들어 있으며 솜씨를 겨루는 것으로 가문의 대소사에 있어 품격을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져 오고 있다.

치자·검은깨·자하초·껍질 벗긴 깨 등으로 곱게 물들인 오색강정과 넓적하게 튀겨 만드는 산과와 약과 등이 만들어 진다. 정성으로 만들어진 닭실한과는 제수용뿐 아니라 찾아온 손님상에 오르면 명문가의 가풍을 흠씬 풍겨 감탄하게 한다. 예전 일본 천황도 그 맛에 감탄했다 한다.

◆권씨 며느리 18명이 고집하는 전통 내림손맛

닭실한과를 만들어 내는 안동권씨 충재 선생 후손 며느리 18명은 누구 하나 정확한 제조법을 배우지 않았다. 시집올 때부터 시어머니들의 손맛을 어깨 너머로 배우고 전통재료와 전통 생산방식을 고집하면서 500년 맛을 이어오고 있는 것.

"음력 설이 제일 바빠요. 주문이 밀려서 매일 밤 늦게까지 만들어야 해요"

충재종가 손숙 종부가 몸이 불편해지면서 이 사업장을 책임지고 있는 35대 며느리 박정자(59) 회장은 한과가 널려있는 한 모퉁이에 자리한 책상위에서 주문 내용을 기록한 두루마리 종이를 펼쳐 보인다. 서울·대전·부산 등 전국 곳곳의 주소가 촘촘히 적혀 있다.

20여년째 한과를 만들어 오는 동안 백화점이나 식품업체에서 납품계약을 수차례 제의해오고 있지만 수량을 늘릴 수 없어 모두 거절했다. 18명의 며느리들이 손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만든다는 것이 닭실한과의 첫 번째 원칙이다.

이들은 "기계 몇 대 들여 놓으면 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렇게 만들면 정성이 빠지는데 어찌 조상님들 제사상에 올리며 손님상에 올릴 수 있겠어요"라고 한다. 닭실한과가 500년을 지난 지금에도 명품한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다.

◆빻고 찌고 말리고 튀기고 장식 '혀 끝에서 사르르'

닭실한과 생산사업장은 재료 손질과 말리기, 튀기기, 장식하기 등 작업단계에 따라 네 칸의 방으로 나눠져 있다. 하루에 스무 되씩 찹쌀을 빻아 시루에 쪄내 홍두깨로 밀어 손바닥만한 떡살을 만든다. 이 떡살은 온돌방 바닥에서 말린 다음 기름에 넣고 나무 주걱으로 눌러 지져낸다. 2, 3배 크기로 지져낸 것에 물엿을 바르고 튀밥을 묻히면 입과(유과)가 완성된다. 1주일 정도의 시간과 숱한 손길로 만들어진 입과는 속이 촘촘하고 입안에서 녹는 느낌이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잔과(손가락 크기의 강정)는 손이 더 많이 간다. 숟가락 자루 크기의 찹쌀떡을 잘라 말린 후 솔잎으로 24시간 이상 덮어 다시 눅눅하게 녹인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가마솥 기름에 튀길 때 잘 부풀어 오르고 바삭한 맛을 내고 속이 꽉 들어찬다. 이렇게 만들어진 잔과 위에는 차나락(찰벼) 튀김과 건포도로 꽃 문양을 만들어 낸다.

약과는 찹쌀에 정종과 소주, 계피가루와 생강을 듬뿍 넣어 만들어낸다. 부드럽게 반죽하는 게 맛의 비결이다. 달지 않으면서도 입에 짝 달라붙는 맛이 일품이다. 인공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떡틀로 찍어내 깨와 잣, 건포도로 꽃 모양을 얹는다.

36대손 며느리 김숙진 총무는 "닭실한과는 옛날 전통방식을 그대로 이어온다. 찹쌀을 담가 불리고, 찌고 떡살을 만들어 널어 말리는데만 3일 이상이 소요된다"며 "500년을 이어온 닭실종가의 손맛을 고스란히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2003년 농촌일손갖기사업장 마련 산업화 나서

닭실한과를 만들어낸 것은 20여년이 흘렀지만 본격적인 산업화에 나선 것은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다. 2003년 영주시농업기술센터가 농촌여성일감갖기사업으로 선정, 지금의 생산시설을 마련해주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닭실한과는 브랜드를 개발하고 정확한 성분과 내용물, 선물용 포장재 등을 개발해 전국 판매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공정을 수작업을 고집하면서 대량생산이 어려워 산업화의 확대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과 브랜드 경쟁력에서 닭실한과는 전국에서 단연 으뜸으로 손 꼽히고 있다.

닭실한과 30g에 함유된 영양성분은 입과(유과) 경우 열량 12kcal, 탄수화물 25g, 단백질 1g으로 1일 영양소 기준치의 10% 정도이지만 콜레스테롤과 나트륨은 포함돼 있지 않다. 한과의 재료도 찹쌀과 쌀, 참깨, 생강, 참기름, 콩가루 등 대부분 국산재료를 엄선해 사용한다.

이곳은 6월에서 8월까지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한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는 12월부터 준비해 1월 들어 꾸준히 제품을 생산해내야 물량을 맞출 수 있다. 1.5kg, 2.5kg, 3.0kg들이 대나무상자 포장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054)673-9541.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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