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작가 : 김우조(金禹祚·1923~)
제작연도 : 1978년
재료 : 다색 목판
크기 : 41.5 × 60㎝
소장 : 개인
다색 목판화는 전체 그림을 몇 장의 판으로 나눠 찍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 장의 판을 단계적으로 사용하며 찍어 낼 수도 있다. 이럴 때 완성한 최종판은 다른 회화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단일성을 지니고 있는데 70년대 낙동강변의 풍경을 사생해서 담은 김우조의 이 작품에서 판화의 그런 예외적인 특징을 맛본다.
목판화를 위해 판을 고를 때, 섬세한 표현을 하고자 하면 혹 단단한 목재를 선호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 조각도가 잘 들어가는 연한 성질이 우선 고려된다. 나무를 고르는 일은 의도하는 작품의 경향에 달렸지만 물감이 너무 귀해 회화에서 판화로 관심을 돌린 이 작가는 오로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점만 꼽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베니어판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가난한 재료를 통해서' 역경의 시대를 상징하고, 내용에서 외래양식의 맹목적 추종이 아닌 '민중적 정서'를 주체적으로 반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담배 은지에 그린 이중섭이나 하드보드지에 그릴 때의 박수근처럼 그도 재료의 난점을 독창적인 기법과 개성적인 작품세계로 개척한 작가다.
김우조의 독특한 미학은 고급재료를 마련하기 힘들었던 현실에서 주어진 환경에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면서 얻은 결과다. 종이, 포스터 컬러, 베니어판 등 서너 가지 대중적인 재료들만으로도 단조롭지 않은 풍부한 표현성을 성취해 낸 것은 이들 물질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재질의 단점들이 도리어 표현상의 특질로 활용된 면이 현저하다. 베니어판은 가로와 세로의 얇은 층들이 교차하며 켜켜이 포개져 있어서 자연히 한쪽 방향으로 뜯겨나가기 쉽고, 깊이 새기기 힘들어 정교하거나 자유로운 곡선은 나타내기 어렵다. 그런 성질은 이 풍경의 구도가 나무의 수직적 모티프와 강물의 수평적인 두 모티프로 구성된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대상과 제작과정을 장악하는 예술가의 통제력이 돋보인다.
시선을 사로잡는 전경의 두 나무와 그 뒤를 흐르는 강물의 수면 표현이 단연 돋보이는데, 강 건너편 포플러 숲의 표현과 함께 재질의 성격을 십분 활용한 덕분이다. 반면에 배경으로 둥근 산봉우리의 형세는 아마도 주의 깊게 새긴 곡선이다. 조각이 까다로운 판의 단점을 가장 잘 극복한 부분은 바로 인상적인 두 나무의 표현인데 고운 재질의 목재가 아니었기에 혹독하게 시달린 겨울나무의 이런 거친 맛이 더 잘 살아난 것 같다. 매체 자체가 사실적인 재현에 한계가 있는데다 더군다나 판이 지닌 특성을 감안한다면 꺾이고 부러져 속을 드러내 보이는 수피나 앙상한 가지에서 드러낸 리얼리티는 압권이다. 비바람에 버티어 선 형태가 생명감을 더해 세파를 견뎌낸 인간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굴곡진 강안을 굽이돌아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은 보기에 도도하기도 하고 짙고 푸른빛은 마치 깊은 속울음이라도 감춘 듯하다.
"하늘은 낮게낮게 내려앉고, 나무들
우두커니 서서 뿌리로 힘을 모으지만,
땅거미 밀려드는 강가에 서서
나무들과 함께, 마른 풀잎에 글썽이는
물방울, 이 투명한 눈물과 함께,
흐르는 강물 소리에 속절없이
귀를 모으는……"
-이태수 시인의 「강물은 엎드려 흐르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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