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호암 탄생 100주년이 얼었던 대구-삼성 관계 녹였다"

이수빈 회장 등 삼성가 임원, 대구 성대한 기념행사에 감동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동상 제막식이 11일 오후 대구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서 열렸다.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지사,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황백 제일모직 사장 등 참석내빈들이 호암 동상 제막식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동상 제막식이 11일 오후 대구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서 열렸다.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지사,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황백 제일모직 사장 등 참석내빈들이 호암 동상 제막식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1일, 삼성이 대구를 찾았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황백 제일모직 사장,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의 CEO급들이 '공식적'으로 대구를 찾은 것은 10년 전 삼성상용차 퇴출 이후 처음이다. 분위기가 달랐다. 그들은 열렬히 환영하는 공무원과 시민들의 모습에 놀랐고, 거창하게 치른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보고 또 한번 놀랐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세계적 기업 삼성의 발상지라는 소중한 자산을 가진 대구가 호암을 대표 브랜드로 키우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번 인연을 계기로 대구와 삼성이 미래를 지향하는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 대구에 감동하다

11일 오후 3시 30분, 대구시청 1층 로비가 시끌벅적했다. 대구시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집회라도 열렸을까? 하지만 분위기는 집회의 모습과 달랐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시 공무원들이었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이날 시청을 방문하는 삼성그룹 CEO들을 환영하기 위한 자리였던 것.

20분쯤 뒤 시청에 모습을 드러낸 이 회장 등 삼성가(家) 임원들은 '융숭'한 환영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한 공무원이 건넨 꽃다발을 든 이 회장은 2층 접견실까지 가는 내내 "당황스럽다. 이렇게 환영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회장의 '황송' 발언은 이후 계속됐다. 접견실에서 "삼성의 발원지인 대구에서 호암 선생의 100주년 탄생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해서 대구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정성을 모아 준비했다"는 김 시장의 말에 이 회장은 "우리가 해야할 일을 대구시가 해준 데 대해 선대 회장의 가족과 친척, 삼성그룹 모든 임직원을 대신해서 깊이 감사한다. 차차 대구경북을 위해 뭔가라도 보답해야 할 텐데,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따뜻한 사랑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하루종일 내린 빗속을 뚫고 이 회장 일행은 기념공원으로 조성될 대구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터를 둘러본 뒤 호암 동상 제막식이 열린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기념음악회, 기념만찬 등에 참석했다. 이 회장은 "대구경북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지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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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삼성 관계 회복의 기회로

이날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앞서 김 시장은 "가까운 사람끼리 서운해지면 더 멀어지듯이 대구와 삼성도 지금까지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며 "이번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계기로 삼성의 발상지라는 소중한 자산을 가진 대구에 삼성사랑, 기업사랑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1일 열린 호암 기념사업이 그동안 얼어붙었던 '대구-삼성'의 관계를 녹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김만제 위원장은 "연간 매출 200조원, 종업원 30만명이라는 규모의 세계적 기업을 만든 호암 선생의 동상이 대구의 제일모직 터에 새겨져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를 계기로 앞으로 대구와 삼성이 미래를 함께 준비하며 잘 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번 호암 기념사업을 시작으로 삼성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접촉의 기회를 더 열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인중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번 행사가 글로벌기업 삼성의 발상지가 대구인 점을 알리면서 대구를 친기업도시로 부각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역민들도 대구가 삼성의 모태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며 "호암의 경영이념이 '사업보국'인데, 이는 지역과 국가가 기업을 아끼고, 기업은 지역과 국가에 대해 봉사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삼상상회터 기념공원 준공식 등을 통해 대구와 삼성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신뢰를 쌓아간다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고 기대했다.

남동균 대구시 정무부시장도 "한번의 만남으로 삼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삼성그룹의 사원 연수원 같은 것을 대구에 짓는다면 신입사원 연수가 있을 때마다 특강은 물론이고 삼성의 발상지 견학 등의 명목으로 회장단의 방문이 이어져 자연스레 만남의 장이 잦아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반면 삼성의 '의사결정 라인' 등 핵심인사의 방문도 아닌데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지역 한 인사는 "삼성그룹은 국내 다른 기업과는 또 다른 의사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계열사 회장 한명 왔다고 관계 개선이 이루어진 양 생각하는 것은 샴페인을 터뜨려도 너무 일찍 터뜨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등 오너 가족이 오지 않아 아쉽다"며 "대구가 생각하는 만큼 삼성이 대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도 최근 '바이오시밀러' 유치를 위해 삼성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삼성과 관계 회복을 위해선 냉정한 현실인식 아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시장도 "삼성이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후원을 결정한 이후 이런저런 물밑접촉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동영상 장성혁기자 jsh052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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