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겨울에 눈도 아닌 비라니.' 만만찮은 고생길 기자체험에 '비'라는 복병까지 만났다. 체험에 나선 지난 10일은 이틀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랑비도 아닌, 제법 큰 비가 체험 현장인 의성 땅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으니.
이번 주 기자체험은 설 명절 '시골우체부'로의 변신이다.
시골우체부, 말만 들어도 고향 생각이 절로 나게 한다. 시골우체부에겐 어릴 적 추억이 담겨 있고, 이웃끼리, 마을과 마을 간 따뜻한 정도 고스란하다.
대구 북대구IC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의성읍 후죽리에 위치한 의성우체국에 도착했다. 비는 점점 굵어져 가끔은 장대비로 돌변해 체험에 나선 나를 처량하게까지 만든다.
의성우체국은 18개 읍·면에 소재한 17개 우체국의 우편 상황을 총지휘하는 '사령부'다. 의성군 전체 집배원 42명 중 의성우체국에만 17명의 베테랑 집배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의성우체국에는 편지, 엽서 등 일반우편물과 특수우편물(등기), 택배 등이 모여 분류된 후 집배원과 집배센터, 집배구, 우편수취함의 유기적인 '공조체제' 아래 군내 각 가정에 '궁금증'을 전달한다. 연간 12만명의 소식이 의성군에 모이고 흩어지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것도 옛날에 비해 '확' 줄어둔 양이란다. '무선'이라는 초현대식 경쟁수단이 등장하기 전 우체국은 '소식'이라는 우리네 궁금증을 전해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숨쉴 겨를도 없이 초스피드 교육을 받고 우체부 옷과 모자를 쓴 다음 우편물 분류에 투입됐다. 정신이 없었다. 더욱이 설을 앞둔 터라 우편실은 북새통이었다. 편지와 엽서, 고지서, 신문들이 수북했고 평소에는 없던 의정보고서는 과장하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다 설 택배 물량까지 겹쳤으니 말이다.
겁부터 났다. 전문가도 아닌, 왕초보가 어떻게 수북한 우편물을 분류해 그것도 마을별로 구분된 분류함에 넣을 수 있겠는가. 옆의 집배원들이 나에게 '느려 터졌다'고 핀잔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주소를 확인한 뒤 분류함에 우편물을 넣기 시작했다. 땀이 절로 났지만 집배원들이 워낙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게으름을 피울 겨를도 없었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우편물 더미에는 마을의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우편물 분류에 이중삼중의 노력이 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상당수의 우편물이 마을별로 분류돼 있어 자동화와 구조조정 등으로 줄어든 집배원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있다.
집배원들은 매일 오전 7시 30분쯤 출근한다. 출근하자마자 접수된 조간 신문을 배달할 지역별로 분류한다. 신문 분류가 끝나면 잠시의 여유도 없이 이내 안동의 우편집중국에서 의성으로 오는 '전국의 소식들'이 우체국에 쏟아진다. 우편물 분류 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집배원들은 2시간의 전쟁을 치른다. 요즘은 설 물량인 택배까지 각 가정으로 분류해야 해 눈코 뜰 새가 없어 보였다. 우편물 분류는 오랜 경험과 집배원별로 할당된 수십개의 분류함을 머릿속에 담아둬야 손과 발의 수고를 덜 수 있다. 무경험자인 기자는 힘이라도 쓸 수밖에. 꽤 무겁지만 수량이 적은 택배물을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쏘다녔다.
평소보다 우편물이 많은데다 비까지 와 거의 정오에 가까워서야 우편 분류를 끝냈다. 집배원들은 점심 식사를 할 여유도 없었다. 분류된 우편물을 배달 오토바이에 싣고, 무거운 택배는 의성우체국과 각 마을의 중간 물류기지인 집배센터로 가는 차량에 실었다. 드디어 집배원과 함께 비옷과 헬멧을 쓰고, '소식'을 전하러 출발했다. 우편 물량만 600여통이나 됐고, 의정보고서도 2천군데나 돌려야 한다. 게다가 택배까지 집배센터에서 기자와 집배원을 기다리고 있다.
시골길은 좁은데다 비까지 내려 질퍽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 덕에 소식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줌마와 삼촌들이 들녘이 아닌 집을 지키고 있어서다. 비도 반가울 때가 있는가 보다.
등기 등 특수우편물의 경우 각 가정에 사람이 없으면 '내일 몇 시까지 다시 올테니 기다려달라'는 읍소형 도착통지서를 남겨야 한다. 또 옛날에는 각 가정이나 마을 어귀에 우편물 수취함이 없었다. 각 가정의 대문을 열어 안방까지 우편물을 배달해야 했고, 농번기에는 사람이 없어 때아닌 우편물 공수작전까지 벌여야 했다. 지금은 우편물 수취함이 잘 갖춰져 있어 집배원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집배원들의 하루 오토바이 주행 거리는 평균 70㎞. 설 명절이 낀 지금은 100㎞를 쉬 넘긴다. 그냥 평탄한 길 100㎞가 아니라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고, 시골길인데다 산속 외딴집도 더러 있어 적잖게 걷는 발품까지 동원해야 했다.
오토바이가 집배원들에 보급된 해는 1984년. 그 이전에는 자전거가 소식을 전했다. 오토바이는 포장도로의 덕을 보고 있지만 자전거는 포장도로보다는 비포장, 정비도 안 된 구불구불 산길과 만나야 했다. 질퍽한 산길에 자전거가 빠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 뿐이랴. 옛날에는 지금보다 비와 눈이 자주와 시냇물을 건널 때만 자전거를 어깨에 올려야 했고, 하천이 범람하면 먼 산길을 돌아도 가야 했다.
몸은 고됐지만 시골은 인정이 넘쳐났다. 할머니는 자식들의 소식에 너무나 반가웠는지 비 속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젊은이 고생한다"며 언 손을 녹여주는 노인분들도 여럿이다. 가을 수확기엔 과일과 떡을 건네는 이웃들도 많다. 때때론 주민들이 건네는 말걸리 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달래기도 한다.
집배원의 주머니엔 동전이 한 움큼이다. 시골이라 교통이 대도시보다 불편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아 노인들이 우편물 배달 현장에서 건넨 '소식'은 '우표값 250원'을 받고 즉시 해결한다.
집배원은 1인 다역이었다. 노인들의 장을 봐 다음날 전해준다. 농사에 쓸 농약과 라면 등 생필품이 많고, 가끔은 시골의 외로움을 달랠 소주도 노인들에게 건넨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마을 소재지의 보건소까지 태워주기도 한다.
오후 5시 배달을 마치기가 무섭게 우체국엔 또다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7시까지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다음날 배달 준비를 완료한 뒤에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요즘같이 명절을 앞둔 날은 퇴근시간이 오후 8시를 넘기기 일쑤다.
집배원들은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지만 택배가 많은 토요일은 조를 나눠 오전 근무도 하고 있다. 집배원들은 매달 한두번씩은 토요일에도 따뜻한 소식을 각 가정에 전하기도 한다.
체험을 끝낸 기자의 허리와 무릎, 어깨엔 강항 압박감이 밀려온다.
집배원은 문명의 이기가 세상을 휩쓰는 세상임에도 우리 곁에 남아 이웃의 정을 전하는 분명 고마운 존재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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