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수십만년을 쌓아온 기술 발전보다 최근 100년의 발전 정도가 훨씬 크다. 그 중에서도 지난 10년의 변화는 눈이 부셔 비교조차 하기 힘들다. 불과 수십년 전 집채만 하던 슈퍼컴퓨터(애니악)는 이제 손바닥 안에 넣어 사용하는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심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할아버지·할머니가 아날로그 세대라면 부모는 디지털 세대, 이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초디지털 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네댓살이면 컴퓨터 마우스를 손에 쥐고 포털사이트의 쥬니어 네이버, 야후 꾸러기, 다음 키즈짱 등 곳곳을 찾아다니며 게임을 즐긴다. 글자는 못 읽어도 어디를 클릭하면 어떤 콘텐츠가 나오고, 그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는 안다.
초등학생만 되면 거칠 것이 없다.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다방면에 뛰어난 만능 어린이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특정 분야에 일찍부터 재능을 보여 올인하는 케이스도 있다. 어학둥이, 수학둥이, 예능둥이 등 일찍부터 만능 기질을 보여주는 어린이들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어린이들의 경쟁력과 그 이면을 함께 들여다봤다.
◆어학둥이, 은성준(10)군
"Are you introduce your family?" 한 마디를 던졌는데 대답은 2분 가까이 쏟아졌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둘에 자기 소개까지 유창한 영어가 술술 나왔다. 얼핏 봐도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이 말하는 영어회화 수준 이상이었다.
은성준(동성초교 3)군은 외국어, 특히 영어에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6세 때 처음 영어학원에 갔는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스스로 영어를 배우고 말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은군은 "어려운 영어 단어를 익히고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 즐겁다"며 "모르는 것은 누나들에게 물으면 가르쳐주기 때문에 영어를 배울수록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미 홍콩이나 일본 등지로 가족과 함께한 여행에서 혼자 영어로 궁금한 것을 묻고 물건 사는 것까지 능숙하게 해냈다.
은군은 "중국어를 6개월 정도 배워 간단한 회화는 할 수 있게 됐는데 시간이 없어 더 배우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어와 일본어도 빨리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은군의 재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아이스하키를 배웠고,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 악기도 잘 다룬다. 학교 성적은 깜짝 놀랄 정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지금까지 치른 모든 시험에서 딱 2문제만 틀렸다고 한다. 틀린 문제는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은군의 천재성은 온화한 성격의 치과의사 부모와 똑똑한 누나들의 든든한 뒷받침 속에 활짝 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 엄태진(45)씨는 "가능하면 여러 분야를 배울 기회를 준 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쪽으로 진로를 만들어줄 계획"이라며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니 기특하고 대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수학영재, 이현수(13)군
초등학교 2, 3학년 때 전국수학경시대회 본선에서 연거푸 2등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수학에서 영재성을 드러낸 이현수(월서초교 6)군. 지난해 대구교대 영재원 5학년반을 1등으로 수료한 데 이어 올해는 경북대 영재교육원에 다니게 됐다.
이군은 다섯살 때 외할머니가 구구단 2단을 가르쳐주자 9단까지 터득한 뒤 10단, 11단에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부모는 창의력에 도움이 되는 책을 사다줬으며, 아들은 보는 대로 소화를 시키며 놀라운 학습능력을 보여줬다. 이런 바탕에는 부모의 수학DNA도 작용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형석(47)씨는 수학전문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어머니도 경북대 수학과 출신이었던 것.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이군은 피아노에도 흥미가 커 체르니 40번까지 쳤으며 배드민턴, 축구, 스키도 즐긴다. 검도도 공인 1단이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책을 읽는 습관도 몸에 뱄다.
이군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고 책도 많이 사주신 덕분"이라며 "수학을 잘 하긴 하지만 친구들과 지낼 때는 티를 안 내려 애쓴다"고 말했다.
◆예능둥이, 김민지(13)양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연기를 해요.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도 제가 연기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 거예요."
올해로 벌써 연기학원(한국방송연극영화예술원 대구지원)에서 6년째 연기 및 각종 특기를 배우고 있는 김민지(신천초교 6)양. 김양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동성로에 나왔다가 연기학원이 있는 것을 보고 곧바로 등록시킬 만큼 애정을 쏟았으나 1년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양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딛고 꿋꿋하게 학원에 다니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연기로 승화시키고 있다.
MBC '경상별곡'의 주인공 아역으로 출연해 열연했으며, '음식디미방'에도 얼굴을 내민 김양은 "연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고, 노래와 춤 등 다양한 재능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특기는 감정 표현을 잘 하는 것. 끼와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면 연기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학교 학예회에서는 가끔 끼를 발산한다. 지난 학예회에서는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 '음악이 있음에 난 감사해요'란 곡을 멋지게 불러 친구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스스로 씩씩하게 잘 채워가고 있다. 컴퓨터 워드 3급 자격증을 비롯해 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관련 능력이 뛰어나며 피아노도 상당한 수준(체르니 40번)이다.
김양은 "모든 사람이 나를 알아볼 정도로 유명해지고 싶다"며 "우리 학원 광주지원 출신인 탤런트 겸 영화배우 문근영처럼 대구의 유명한 연예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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