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땅 아래에서 대구 시민들의 빠른 발이 되고 있는 대구 도시철도 1, 2호선은 운행시간에 보는 게 전부여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운행하지 않는 야간에는 무슨 일을 할까 궁금했는데, 막상 현장을 경험하고 나니 노동 강도나 환경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새벽 1시부터 4시 30분 사이에 4, 5명으로 이뤄진 야간 선로점검팀이 1, 2호선 전체에 구간별로 여섯팀이나 투입돼 안전운행을 위한 점검을 하고 있었다.
현장 체험을 위해 23일에서 24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월배차량기지에 도착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 안봉기 전력부장을 비롯해 김동수 월배전기분소장 그리고 이날 점검팀인 월배전기분소 서웅교 팀장을 비롯해 임승규·김경업·정주영 주임, 이성주 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 책상에는 등산화처럼 생긴 작업화, 흰색 안전모를 비롯해 푸른색 작업복과 마스크, 손바닥 쪽에 빨간색이 묻어있는 면장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가 입고 갖춰야 할 것들이었다.
◆무슨 일 하나? '모터카 타고, 땀 송송'
함께 일할 직원들과 30분가량 담소를 나눈 뒤,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이상한 모양의 노란색 차가 선로 맨 끝에 서 있었다. 작업용 특수차로 이름은 '모터카'. 독일 벤츠사에서 만든 것으로 가격이 2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이 차가 없이는 지하철 선로작업이 이뤄지기 어렵다.
모터카에 탑승하자 전력사령부, 관제소 등과 빠르게 교신이 이뤄졌다. '전차선로 단전 확인 및 접지걸이 확인'. 타자마자 정신이 없었다. 허둥대는 기자에게 서웅교 팀장이 설명해줬다. 본격적인 작업이 이뤄지기 전에 고압의 전기가 차단됐는지 두번 이상 확인을 해야만 작업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아하! 감전되면 큰일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서 팀장은 모든 것을 확인한 뒤 기자에게 검침봉을 건넸다. '혹시 잔류라도 흐르면 안 되는데.' 은근히 겁이 났다. 수차례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지하철에 전기를 공급하는 지상부 전차선에 검침봉을 갖다 댔다.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안전하다는 뜻. 얼른 검침봉을 내렸다. 정신이 없는 탓에 기자가 외쳤다. "오케이! 단전 확인. 출발!"
본격적인 야간 선로작업이 시작됐다. 오늘의 주 작업은 '터널 입구 이행구간 점검' '흐름방지장치(앵커링·Anchoring) 점검' '신축구분장치'(Expension Joint) '절연 확보를 위한 애자청소작업' '강제전차선 높이 편위 측정' '본선 중앙환기실 전기설비 점검' 등이다. 말이 너무 어려워 자세히 물었다. 흐름방지장치는 위쪽 전차선이 차량에 밀리지 않게 막아주는 장치이고 신축구분장치는 전차선이 온도, 습도, 높이 등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만든 장치다. 큰 접시같이 생긴 애자는 고압전기가 밖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 설명을 들으니 대충 이해가 됐다.
모터카가 선로 위를 달리면서 모든 점검이 하나하나 이뤄졌다.
◆선로점검팀, '고생고생 말도 못 해'
근무시간도 참! 새벽 1시부터 4시 30분. 원조 꽃미남 가수 김원준이 부른 노래를 개사하면 딱 맞다. '♪모두 잠든 후에~, 점검할 거야. 아무도 모르게 철저하게!♪' 올겨울은 유난히 추워 작업자들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지하구간 입구에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얼음동굴에 들어가는 기분. 그러나 어쩌랴. 춥건 덥건 시간만 되면 야간조는 무조건 투입이다.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일을 해야 대구 도시철도가 안전하게 움직이니.
지상구간에서 지하구간으로 돌입해 본격 작업이 이뤄지자 공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차갑고 매캐했다. 도저히 마스크를 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작업은 정확히 이뤄져야 한다. 모터카 위에 올라탄 조는 전기공급이 이뤄지는 위쪽 전차선과 각종 장치들의 이상 유무를 확실하게 점검해야 한다. 서 팀장을 비롯해 이날 점검팀은 구간구간마다 정지해 각 장치들의 조임 상태를 점검했으며, 청소작업까지 병행했다.
모터카 운전사 정주영 주임은 기자가 앞자리에 타자 "모터카가 지하철 선로를 이탈하기라도 하면 다시 올리는 데 2시간은 걸린다"며 "자칫하면 본선 운행을 지연시킬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 운전한다"고 말했다.
작업팀 막내 이성주 사원은 "여태껏 이렇게 고생한 덕에 개통 후 한번도 선로 이상이나 안전사고가 없었다"며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혼인 임승규 주임은 "1시부터 4시 30분까지 힘든 작업을 한 뒤에는 교대시간인 오전 9시까지 대기해야 하는데 이 시간도 유급 근로에 포함됐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작업팀은 이성주 사원을 제외하면 모두 13~25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들이었다.
이날 작업은 월배차량기지에서 출발해 대곡-진천역을 거쳐 현충로까지 거의 4시간가량 이뤄졌다. 전차선 높이 점검에서부터 각종 전기장치 점검, 선로 청소 등 만만찮은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일을 끝내고 나오자 안봉기 부장과 김동수 분소장, 서정우 홍보팀 과장이 "고생했다"며 인근 굴국밥 식당으로 안내했다.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숨 쉬기도 힘들었지만 이런 작업 덕에 대구 시민들이 안전하게 하루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야간 선로점검팀을 비롯해 대구도시철도공사의 모든 직원들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데 대해 김인환 사장은 "직원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경영진들 역시 현장 근무체험을 통해 직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근무 환경 개선과 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노사(勞使)는 한가족이라는 공동체의식을 확산시켜 지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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