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 선거에 다소 가려 있지만 3개월이 채 남지 않은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물밑 운동이 숨가쁘다. 첫 직접선거로 뽑는 대구는 예비후보 등록자만 10명이다. 본 등록 마감이 5월 중순이어서 추가 등록자도 있겠지만 현재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경쟁률이다. 이들은 누구를 뽑아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의 교육 전문가들이다. 교육장과 교육위원에서부터 대학교수, 교사와 전직 교총회장, 시의회 의장도 있다. 대구 교육 발전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뜻일 테니 고마운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격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 정책을 쏟아내지만, 현실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체질이 돼 있지 않다. 그 정책의 실질적인 효과 여부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단순한 과도기로 받아들이기에는 혼란이 너무 크다. 특히 대구 교육은 각종 대외적인 지표와 성적이 전국 최하위권이라는 데서 나타나듯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하면 침체기가 오래 갈 수도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교육감 선거는 큰 의미가 있다. 당장 대구 교육을 고양시킬 수 있는 인사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들리는 소식은 그렇지 못하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 기간까지 두 달이 넘게 남았는데 벌써 과열을 넘어 혼탁 분위기다. 선거법 위반 행위는 다반사고, 흑색선전에다 사생활 파헤치기도 서슴지 않는다 한다. 각 후보의 경력만 보면 누구도 불법을 저지를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는 교육감을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로 보기 때문이다. 어떤 자리가 권력으로 보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쟁취의 대상이 된다.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기초의원 선거 등 선거라는 이름만 붙으면 막장 수준이니 교육감 선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고 치면 속 편하지만 이들 중 한 사람에게 우리 아이의 교육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학문의 깊이를 최고로 쳤던 사대부(士大夫) 국가 조선에서 가장 상징적인 자리는 대제학(大提學)이었다. 직급은 정 2품의 판서급이지만 온 유생의 존경과 함께 나라님도 함부로 대하지 못해 정 1품인 삼정승이 부럽잖았다. 보통 홍문관과 예문관, 성균관의 대사성(大司成),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겸했는데 이를 '문형'(文衡)이라고 불렀다. 나라의 학문을 바르게 평가하는 저울이라는 뜻이다.
학문을 닦은 사대부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였지만 이를 사퇴한 이도 있었다. 명종 때인 1566년, 사암(思菴) 박순(朴淳)은 대제학에 제수됐다. 하지만 퇴계 이황이 아래 직급인 제학에 제수되자 대제학을 사퇴한다. 나이로 보나 학문의 깊이로 보나 퇴계를 따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퇴계는 66세, 사암은 44세였다. 결과는 사암의 사퇴, 퇴계 제수, 퇴계 사퇴, 다시 사암 제수로 이어졌지만 이 한 번의 양보로 사암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400년도 더 지난 케케묵은 이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염치(廉恥) 때문이다. 사암도 대제학 자리가 탐났겠지만 그에게는 사대부로서의 염치가 더 중요했다. 그 염치가 명분을 살리고 실익도 돌아오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염치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암은 나설 자리와 나서지 않을 자리를 잘 헤아릴 수 있는 염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학문이 깊고, 전문성이 높다고 교육감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의 대구 교육감은 대구의 교육 체질 변화를 위해 권력을 휘둘러 볼 틈도 없이 바쁘게 임기를 마칠 준비가 돼 있는 인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벌써 흑색선전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기에 바쁜 인사라면 교육감이 되고 난 뒤 하는 일도 뻔할 것이다.
교사가 바뀌면 학급이 바뀌고, 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교육감의 의식이 바뀐다면 그 영향력과 파급 효과는 상상하기 힘들다. 바뀌고, 바꿀 준비가 안 된 후보자라면 일찌감치 판을 접는 게 옳다. 그게 염치를 아는 사람이다.
鄭知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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