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성로 日商 번창, 서성로엔 巨富들 밀집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일제강점기 때 대구 읍성이 헐리고,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자연 대구 도심의 내용물도 '전통'에서 '현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대구 도심은 일인 상점으로 채워졌다. 대구 북성로는 모토마치(元町)라 불린 상업의 중심지였다. 조경회사 스기하라합자회사, 목재회사 구로가와 재목점, 대구 최초 목욕탕 조일탕, 대구 최초 백화점 미나카이, 대구 곡물회사, 마쓰노 석유회사, 철물점 등이 생소한 일본어 간판을 내걸고 늘어섰다.

북성로는 식당, 요릿집, 영화관, 여관 등이 있던 무라카미초(향촌동)와 연결돼 대구 최고의 번화가를 이뤘다. 특히 미나카이는 5층 건물로 지어질 당시 대구 최고층 건물로 기둥 사이에 붉은 벽돌을 쌓고 타일을 붙였으며 안에는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됐다. 꼭대기층에는 카페가 있어 지방의 재력가들이 드나들었다.

약재상들이 자리 잡은 남성로는 서문시장과 함께 민족 자본의 중심이었으며 주변 골목에는 객주, 거간들이 묵어가는 여관, 마방, 주점, 요정 등이 위치했다. 미국의 북장로파 선교사들이 세운 남문예배당(현 제일교회)이 있고 건너편에는 교남YMCA, 서편으로 희도학교가 위치하는 등 선교사업의 중심지가 됐다.

서성로 일대에는 조선인 거부들이 많이 살았다. 골목에 남은 한옥들과 붉은 벽돌 담장은 근대기 대구 부자들이 살던 곳임을 말해준다.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폭로자 신분을 사실상 공개하며 내란을 희화화하고 여성 구의원을 도촬한 보좌진과의 갈등을 폭로했다. 그는 보좌진 6...
대구시는 '판교형 테크노밸리' 육성 구상을 본격 추진하며, 도심융합특구의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해 2035년까지 지역 산업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억류된 북한군 포로 2명이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귀순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들은 탈북민 단체를 통해 받은 편...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