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류재성의 미국책읽기] 미국의 유권자/앵거스 캠벨 외 저

미국 정당과 유권자의 '행복한 결혼'

『미국의 유권자』는 미국 유권자들의 정치적 태도와 투표 선택에 대한 포괄적인 이론서다. 1960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여론조사 및 통계분석 방법에 기초한 발견 및 주장을 담고 있다. 출간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제시된 미국 유권자의 특징은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책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 4인은 당시 모두 미시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들로, 이후 '미시간학파'라 불리는 선거행태 연구자 집단의 모태가 된다. 이들은 1948년 선거 이래 단 한 차례의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중간 선거 및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선거 관련 시계열 데이터를 구축한다. '미국 선거연구'(American National Election Studies)라 불리는 이 데이터는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선거 연구를 위한 데이터 구축의 전범이 된다.

1952년 및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연구된 573쪽의 이 방대한 저작의 핵심적인 발견 및 주장은 사실 그다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투표 참여 및 후보 선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정당 일체감'이라 불리는 정당에 대한 태도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 유권자는 정책 이슈나 후보자에 대한 선호에 우선하여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당 일체감'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 혹은 변화하는가에 대한 이들의 주장이다. 정당 일체감은 성인기가 시작될 즈음 특정 정당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인 애착에 의해 형성된다. 따라서 정당 일체감은 정당의 정강 정책에 대한 이성적인, 혹은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가 아니며 사회'경제적인 이해관계를 계산한 결과도 아니다. 정당 일체감은 한번 형성되면 개인의 일생을 통해 고착되며 특별한 전기가 없는 한 그 충성심이 유지된다. 따라서 선거 캠페인을 통한 타당 지지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으로만 가능하며 선거 캠페인의 효과는 기존 정당 지지의 활성화에 국한된다. 미국 유권자는 그래서 선거 캠페인 기간 동안 제시되는 정책이나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지식 없이 투표 결정을 한다. 실제로 상당수의 미국 유권자는 정책에 대한 일관되고 지속적인 태도 및 선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요컨대 무지와 무관심이 미국 유권자의 또 다른 주요한 특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정책 이슈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 유권자의 선택을 결정하는 정당의 중요성이다. 무엇보다 미국 정당의 역사는 유구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 체계가 성립된 것이 1854년의 일이므로 현재와 같은 정당 체제가 지난 150년 이상 유지되어 온 것이다. 알려진 대로 미국 정당은 유럽 정당들처럼 일정한 책임과 권리를 갖는 기간 당원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말하자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당원이 아닌 지지자들의 상징적인 구심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두 주요 정당이 유권자의 선택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은 이합집산하며 단명하는 한국의 정당을 생각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당의 '역사'가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투표 선택의 준거로서의 기능이 선거 기간 동안 반짝 이루어지는 매력적인 공약이나 구호보다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적인 대립은 역사적 정점에 달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입법안에 대한 상'하원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은 단 한명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의 정당 간 대립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하나의 미국'은 현실화되기에는 너무나 '담대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당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너무나 신사적인, 혹은 교양 있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대립하고 경쟁하는 정당들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그 갈등의 표출이 정해진 규칙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 유권자들도 미국 유권자들이 갖는 권리, 말하자면 '역사'를 통해 선택의 준거를 제공받으며 '질서 있게 갈등'하는 정당을 가질 권리를 언제쯤이면 누리게 될 것인가? 미국 정당과 유권자의 행복한 결혼을 꿈꾸기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척박하다.

계명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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