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리스 재정위기, 유럽 넘어 어디까지 갈까

그리스에서 시작한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존 15개국이 그리스에 1천100억유로(161조원)라는 엄청난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위기는 오히려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국지적으로 끝나지 않고 유럽은행들의 연쇄 도산과 세계 경제를 흔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미노 효과 오나

그리스 위기는 단순히 국가 부채를 해결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하경제로 인해 취약해진 세수기반과 공공부문의 과잉 인력, 과도한 사회보장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 공동통화인 유로화에 묶여 있기 때문에 환율이나 금리 정책을 쓸 수도 없고 긴축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의 긴축안은 전혀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는 3년 동안 재정적자의 11%에 이르는 300억유로 규모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경제를 위축시켜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 재정위기의 파장이 다른 유럽 국가로 전염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은행들이 대부분 역내 교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게 되면 유럽은행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 최대의 채권투자회사 핌코(Pimco)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재정위기 문제가 다른 국가들로 확산되기 직전의 상황이라면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미국도 '전염'(infect)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엘-에리언은 "이 위기가 2008∼2009년 금융위기와 비슷한 양상으로 비화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가 지역 문제가 되고 유로존 전체에 충격을 주는 것을 목격해 왔으며, 이는 전 세계의 문제가 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부채는 위기를 해당 지역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전달 장치'(transmission mechanism)라면서 이를 매우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제 신용평가업체인 무디스도 그리스의 위기가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의 은행 시스템으로 전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등과 같은 유럽 국가의 은행들이 최근 글로벌 신용위기 상황에서 심각한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리스 재정위기가 심화하면 이들 국가의 은행 부문 역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회생의 길은 멀다

전문가들은 그리스 사태로 인한 금융 불안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가 디폴트 상황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단기간에 회생하기도 힘들다는 것. 그리스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도 있다. 독일이 구제금융안을 승인하면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경제 지표 호전과 중국시장 활황이 계속될 경우 시장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투자 비중이 낮은 국내 경제는 당장 큰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그리스 국채 보유량이 많은 국가들이 타격을 입을 경우 국내 금융계도 피해를 면키 어렵다.

그리스 사태가 숙져도 위기의 재발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그리스 사태와 같은 위기가 유럽 지역에서 앞으로 재발할 우려가 크다고 전망했다. 이는 유럽 경제가 단일 화폐를 쓰는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을 출범시키면서 안게 된 5가지 모순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흥모 한은 해외조사실장은 7일 "EMU는 '괜찮은' 국가와 '괜찮지 않은' 국가가 무리하게 뒤섞인 탓에 역내 불균형(Imbalance)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했다"며 "회원국 간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유로존의 모든 회원국이 국가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로화로 같은 환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환율이 위기를 경고하는 '조기 경보' 기능을 못했다는 것. 물가 수준과 대외 경쟁력을 반영한 실질실효환율을 따져 보면 산업 경쟁력이 낮은 회원국은 고평가돼 있고, 경쟁력이 높은 회원국은 저평가돼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3개국의 상품수지는 2008년 한 해 동안 독일을 상대로 400억달러를 넘는 적자를 봤다. 역내 교역에서 본 적자는 총 800억달러에 달했다. 실물과 금융 부문의 지나친 '자급 자족형' 구조도 위기의 전염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다. 역내 상품 교역량이 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EMU 출범 당시 28%에서 10년 만에 33%로 높아졌다. 남유럽 4개국에 아일랜드를 포함한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은 전체 차입금의 48%에서 최대 72%에 달한다. 유로지역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정책을 결정하고 각 회원국 정부가 재정정책을 결정하다 국내 경기를 부양하려 해도 ECB가 정책금리를 높이면 재정 적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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