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말 잔치

아크멧 수카르노, 가말 압델 나세르. 모두 식민지 조국을 해방시키고 '제3세계'를 이끈 정치 거인이었지만 국민을 먹여 살리는 데는 관심도, 능력도 없었다.

수카르노는 제3세계의 탄생을 알린 1948년 4월 18~20일 '반둥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는 알아주는 거물이 됐지만 행정 능력은 없었다. 그는 이를 말 만드는 재주로 감췄다. 1950년대에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외국을 비난하는 것으로 국민의 관심을 돌렸다. 이를 위해 동원된 말은 휘황찬란했다.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 식민주의(Colonialism), 제국주의(Imperialism)를 합쳐 네콜림(NECOLIM)이란 단어를 만들었고, 국제연합이 자기를 비난하자 '홀로 일어서자'란 뜻의 '베르디카리'(BERDIKARI)란 신조어로 대응했다. 자신의 통치철학 선전을 위해 혁명(Revolution), 인도네시아 사회주의(Indonesian Socialism), 타고난 지도력(natural leadership)을 합친 레소핌(RESOPIM)이란 말도 만들어냈다. 특히 인도네시아판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교도 민주주의'(guided democracy)란 말을 만들어 낸 것은 유명하다. 여기서 교도(敎導)의 주체는 물론 수카르노 자신이었다.

나세르도 겉멋에 취한 지도자의 전형이다. 그도 수카르노처럼 말만 잘했다. 대중을 자극하는 표어나 표제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지만 다른 재주는 없었다. 말만 번드르르했지 그의 철학에는 부를 창출할 만한 개념이 전무했다. 이에 따른 국내적 위기의 처리 방식은 수카르노처럼 대외적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1956~1957년 수에즈 운하 위기이다. 결국 수에즈 운하 국유화란 정치적 성과를 거뒀지만 그것이 나라를 가난에서 건져 주지는 않았다. 그는 가난한 국민을 먹이고 입히는 골치 아픈 일보다는 국제적 스타가 되는 데 더 골몰했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말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야당 대표가 '현 정권 심판론'을 제기하자 여당 대표는 '전 정권 심판론'으로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지방을 어떻게 입히고 먹이겠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이 사라지고 '생활정치'에서 생활이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가히 '정치 과잉'이요 '말의 과잉'이다. 정치권의 말 잔치 속에 지금도 지방은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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