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구경북과 독일 함부르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2년 전 대구국제사진비엔날레 총지휘를 맡았으며, 올해 경일대학교 사진학과 전임교수로 온 구본창(57)씨가 가장 좋아하는 두 지역이다. 경기도 분당에서 살고 있지만 매주 1박2일 또는 2박3일 강의를 위해 경산 하양의 경일대학교로 찾아온다. 자신의 승용차를 KTX 광명역에 주차해두고, 동대구역에 도착해 또다시 하양역까지 가서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땐 거꾸로 돌아온다. 어지간한 열정이 아니고선 하기 힘든 일이다.
독일 함부르크 역시 그의 열정이 아니고선 갈 수 없었던 곳. 그는 미술과 사진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직장을 내던지고 독일행을 감행했다.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로지 내면의 영혼과 소통하고 싶을 뿐이었다. 함부르크는 그의 모든 감수성을 자극했다. 어딜 가나 새로웠고 보고 배울 게 가득했다. 경북 역시 마찬가지다. 안동, 영주, 경주 등 전통과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기에 다음 학기부터 학생들과 함께 사진 찍을 곳이 가득하다.
공통점은 또 있다. 구본창은 국토 균형발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모든 게 서울 중심적이고, 사고방식마저 서울 표준으로 맞춰져 있는 현실을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대구경북과 함부르크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는 "아웃사이더적 사고와 삶의 방식을 고집했던 내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듯이 지역의 창조적 발전만이 서울 중심적 사고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19일 경일대학교 인근 복어식당에서 구본창을 만났다.
◆'외톨이야! 외톨이야!'
구본창은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은 내성적인 아이였다. 집안에서도 공부로 볼 땐 그리 주목받지 못한 존재. 떠밀리다시피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지만 공부는 관심 밖이었다. 항상 혼자 다니면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동아리 활동을 하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지냈다.
사물을 볼 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대화법이나 독특한 관점이 어떤 작품에서 크게 발휘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숨 시리즈나 백자 시리즈"라며 "오랜 시간의 관찰을 통해 고요한 가운데 미세한 떨림이 느껴질 때가 있었고, 이를 사진에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답했다. 실제 그의 연구실에서 백자 사진을 보니 조선시대 장인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구본창은 충격적이게도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 심정을 묻자 "인간의 영혼이 마치 수증기처럼 육신에서 빠져나간다는 생각, 마치 식물이 말라 죽을 때처럼 인간의 육신에서도 수분이 사라지고 수분과 함께 영혼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숨이 남아 있는 그 경계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솔직히 아버지에 대한 도리는 잠시 접었다"며 "모든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지 나의 아버지만이 겪는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여겨 촬영하고 발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외톨이라고 여기는 구본창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탓에 결혼도 뒷전으로 밀어냈다. 20일 새벽 기자의 이메일을 통해 이런 답장이 왔다. "젊었을 때 결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다른 사람과 친절히 시간을 나눌 마음의 자세가 안 되네요. 내 중심의 삶을 살고 있어서 누구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삶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모든 시간과 정열을 내가 원하는 나의 방향대로 나의 취향대로 살아와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속에 우뚝 선 구본창
"구본창의 작품은 조용한 가운데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느낌이 오래 남는다." 한 후배 사진작가에게 들은 말이다. 그에게 가장 아끼는 사진 석 장만 꼽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백자 사발' '가산 오광대 작은 양반탈' '먼지가 낀 빈 상자 이미지'를 보여줬다.
사진에 문외한인 기자가 봐도 놀라웠다. 백자의 고요함 속에 담긴 아름다운 선과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 인생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탈을 쓴 세 선비, 그리고 상자 속 구석에 낀 먼지를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너무 주관적으로 느낀 걸까? 선배 사진기자에게 물어보니 작가가 전달하려는 보편적인 느낌이 맞다고 했다.
구본창은 시공간을 초월한 사진작가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그는 입상 경력을 중시하고 권위적인 기존 세계에 반항아이기도 하다. 진정한 실력으로 평가해 자신과 마음이 맞는 작가군(배병우, 김중만 등)과 함께 국내·외 작품전을 여는 등 대한민국 사진작가의 실력을 배양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
구본창은 "사진작가의 활동도 어떻게 보면 국력의 확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작가들이 해외를 개척한 것이 불과 몇년 사이의 일이지만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작가만 훌륭하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해외에 책을 배급할 수 있는 출판사·기획자·사진 박물관 등 제반 여건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본창 개인사에서 큰 계기가 된 일들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처음으로 안정적인 클라이언트 에스콰이어를 만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었을 때, 2000년 삼성 로댕갤러리에서 사진작가로 처음 초대받아 20년간의 작업을 정리했을 때, 2006년 백자시리즈로 한국의 대표적인 화랑인 국제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라고 꼽았다.
그는 "전국 대학에서 사진 실력으로는 중앙대와 경일대가 알아주는데 내가 가르친 경일대 제자들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사진작가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했다.
구본창은 사진작가이자 대학교수이지만 '생각의 바다' 'Deja-vu' 'Art Vivant, 구본창' '밝은 방 1,2,3,4' 'Fotofest 2000' '자거라 네 슬픔아' 'Hysteric Nine'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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