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오락관=허참'. 등식이 성립된다. 26년간 안방극장 국민MC 허참. 이름부터 재미있다. 1970년대 초 언더그라운드에서 DJ를 하다 한 청취자가 이름을 묻자 "허~, 참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라고 애드리브성 멘트를 날렸는데 머리 속에 섬광처럼 번뜩 지나갔다. 이름을 바꾸자. '허참'으로.
본명은 '뽀빠이'라는 애칭이 따라붙는 MC 이상용과 똑같다. 그래서 본명을 웬만해선 잘 말하지 않는다. 이젠 인생의 절반 이상을 '허참'으로 살아가다 보니 '허참'을 자신의 본명이라 여긴다고 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61)지만 아직도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얼굴 가득한 이팔청춘 MC. 26년간 수성했던 가족오락관은 지난해 폐지돼 떠났지만 현재 가수 강수지와 함께 교통방송 프로그램, 20대 상큼한 아이돌MC와 함께 케이블 방송 M.NET의 최신 가요프로를 진행할 정도로 여전히 짱짱하다.
'부산시 서구 부민동 OO번지 8통2반'이 본적이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그는 부산 사나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사회자로 두각을 나타냈고, 서울 바닥을 전전하다 우연찮게 방송을 하게 되면서 유명세를 타 국민 MC 호칭까지 얻었다.
젊고 활기차게 사는 허참을 25일 서울 남산 아래 교통방송국에서 만났다. 방송국 앞으로 가니 녹음이 우거진 야외 휴게실에서 누군가 외쳤다. "여깁니다. 잘 찾아오셨네요." 그는 신기하리만치 정확하게 대구에서 올라온 기자를 알아봤다. 커피를 절반 정도 마신 걸 보니 이미 10분 이상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가족오락관 MC가 된 건 '운명적 로또'
역설적 표현이다. 로또면 로또지 운명적 로또는 또 무엇인가. 허참이 가족오락관 MC가 되기까지 과정을 들어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천성적인 낙천성과 센스,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실력을 쌓아온 부단한 노력들이 기회가 왔을 때 여지없이 화답해주며 성공으로 이끌어준 것.
부산에서 태어난 허참은 어릴 때 굴렁쇠를 굴려가며 송도 십리길을 통학했다. 어릴 때 송도 등대 앞바다에서 놀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걸 셰퍼드가 물에 뛰어들어 기적처럼 살려낸 적도 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개가 절 구해준 걸 보면 뭔가 운명적 수호신이 있는 것 같죠? 누구나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다고 한다는군요"라고 말했다.
허참은 송도 앞바다에서 바다를 보며 혼자 웅변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바다를 사랑하며 혼자 놀기를 즐겼던 소년은 고교 졸업 후 군대에 입대하면서 국민MC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대에서 웅변대회를 했는데 3명의 출전자 중 한명은 감기에 걸려서 제대로 못하고, 한명은 원고를 제때 내지 못해 탈락하는 바람에 1등에 오르는 행운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사단 웅변대회에서 대상을 차지, 운과 실력이 함께하는 사람임을 보여줬다.
행운은 또 작용했다. 자신과 동료 가운데 한명을 문선대에 차출하는데 실제 뽑힌 동료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허참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 허참은 군 방송과 각종 행사에서 MC를 꿰차며 향후 대성을 예고했다. 그는 "대구 출신의 개그맨 김제동이 군대에서 장병들을 울리고 웃기며 사회자로서 자신감을 얻은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제대 후 그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일단 칼을 갈며 기회를 기다렸다. 방송인 이종환씨가 운영했던 서울 종로의 '쉘부르 음악실'에서 인기 DJ로 수많은 팬을 확보했다. 그러던 중 MBC 박원웅PD가 이곳을 찾아왔고, 이내 허참을 지상파 방송에 데뷔시켰다. 이미 내공은 쌓여있었던 터라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이후 허참은 만 12년 동안 여러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MC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다 1984년 가족오락관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다른 프로그램을 거의 다 접고 이 프로그램에만 온 정열을 쏟으면서 매주 '몇대몇'을 외치는 MC로 자리하게 됐다.
◆'여복(女福)도 많아요', 옆에는 항상 미녀MC
허참은 "예쁜 여성이 좋으냐"는 질문에 "나는 여복이 많다. 환갑이 지났지만 아직 내 옆에는 가수 강수지가 함께 호흡을 맞춰주고 있으며, 케이블 방송에서는 아이돌 걸그룹 멤버들과도 함께 진행한다"며 "이들과 호흡하면서 트렌드를 따라가고 젊은 감각의 문화들을 배우다 보니 늙지 않는 것 같다"고 답했다.
가족오락관에서 26년간 최장수MC를 맡는 동안 수십명의 미녀MC들이 허참과 이구동성으로 '몇대몇'을 외쳤다. "젊고 예쁜 여성이 주는 에너지는 분명히 있지 않으냐"고 그가 반문했을 때 기자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세대를 넘어 주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다. "주부 팬들의 환호성은 내 에너지의 원천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엄마 손을 잡고 가족오락관을 방청하러 온 딸이 20년이 지나 다시 주부가 돼 방청객으로 와 그런 얘기를 들려줄 때면 뿌듯하면서도 '내가 나이가 이렇게 들었구나'라는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허참은 할머니와 어머니, 딸까지 3대가 팬인 경우도 많이 접했다. 대형소매점 등에서 만난 팬이 이런 얘기를 들려줄 때면 '내가 한 집안의 여자들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구나!'라고 스스로 감탄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이쯤 되면 허참 인생에서 여복이 많은 게 분명하죠"라고 다시 한번 확인사살을 했다.
허참의 가족은 부인과 1남2녀. 자녀들은 모두 결혼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의 끼 넘치는 DNA는 아무도 물려받지 않아 연예계에 종사하는 자녀는 없다고 한다. 두 딸 모두 잘살고 있으며 아들은 두 달 전에 결혼해 미국 버지니아에 있다.
농담이 오가는 중에도 가족오락관에 대한 애착은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송해' '가요무대=김동건' '가족오락관=허참'은 KBS의 대표적 장수 프로그램으로 더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가족오락관은 상업주의에 밀려 26세로 삶을 마감했지만, 저의 방송철학은 계속됩니다. 전 어떤 프로그램이든 큐 사인이 떨어지면 그냥 무아지경으로 들어갑니다. 시작하면 근심 걱정 모두 잊고 목소리를 한 톤 높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즐깁니다. 그 와중에 오버는 하지 않으려 절제하고요."
허참은 가족오락관을 진행한 26년 동안 교통사고로 인해 딱 한 번 방송을 하지 못했다. 그때 무너진 코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제야 특수 보톡스 주사를 맞고 있다고 했다. 프로는 프로다. 허~ 참.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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