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그날, 초·중·고 시절은 물론 의사나 신경외과 전문의로 키워준 스승님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문득 그분들 외에 나에게서 치료를 받았던 분들과 그 가족 분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신경외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환자분들은 나에게 병에 대한 증상을, 진단소견을, 그리고 치료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시에는 귀중한 뇌도 숨김없이 보여 주었고, 회복되었을 때에는 가슴 벅찬 환희도 맛보게 했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평범한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도 그분들로부터 배웠다. 뇌종양 수술 이후 끊임없이 발생하는 간질 발작을 견디기가 힘들어 앙탈하는 자식을 돌보며 업고(業苦)인 양 묵묵히 살아가는 부모를 보면서, 뇌경색으로 장애인이 된 자식을 간병하며 '자기가 죽으면 누가 자식을 돌보겠느냐'고 오래 살아야 할 이유를 대는 환자의 어머니를 대하면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평범한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를 깨닫기도 했다.
진정한 부부애를 가르쳐 주신 분들도 있다. 뇌졸중 후 식물상태로 누워 있는 남편을 5년 이상 돌보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부인과, 왼쪽 측두엽 뇌에 출혈이 발생하여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남편을 잠시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부인을 5년 이상 돌보고 있는 남편이 그분들이다. 소란스런 식장에서 순식간에 끝나는 결혼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 책임이 무거운지를 이분들에게서 배웠다.
인간의 생명은 신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깨우쳐준 분들도 있다. 내일 수술 예정이던 환자가 내 앞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모습도 보았고, 36시간이나 장시간 수술한 환자가 멀쩡하게 회복하여 퇴원하는 모습도 보았다. 30분 전에 회사에 출근한다고 나간 남편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그 몸뚱이를 붙잡고 혼절하던 부인의 모습도 보았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인간의 생사(生死)는 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깨닫고 배웠다.
어떤 수필가가 '자기의 글은 자연이 이야기하는 것을 받아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토로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한 의료행위는 환자들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하고 가르쳐준 것을 받아서 시행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내가 살아 온 모습은 환자 가족들이 보여준 태도를 본받아 살아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학창시절의 스승님들도 지금의 나를 만든 귀중한 스승님들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내 환자분들과 그 가족들도 훌륭한 나의 스승님들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임만빈<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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