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상조(27·서구 원대동)씨는 지난 12일 남아공 월드컵 한국 축구대표팀의 그리스전 경기때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한 거리응원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김씨는 "콩나물 시루같이 촘촘한 인파 틈에서 빠져나오느라 안경이 부러졌고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응원 소리보다 '사람 죽겠다'는 시민들의 아우성이 더 크게 들릴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구 동성로 거리응원전에 대비한 경찰과 대구시의 준비부족이 시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지난 그리스전때 동성로 거리응원 인파를 예상하지 못한 경찰과 대구시 등은 안전사고 예방에는 손을 놓다시피해 시민 불편이 극에 달했다. 급기야 경찰은 오는 17일 아르헨티나전을 앞두고 대구시에 동성로 거리응원 취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전이 열린 12일 동성로는 '통제불능지대'였다. 대구백화점 앞에서 한일극장까지 폭 12m, 길이 170m 거리에 3만명이 운집했지만 대구시와 경찰은 5천여명 밖에 모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안전펜스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의경 100여명이 현장에 나왔지만 인파 속에 갇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다리를 접질렀다는 한 여성은 이날 "아프다"며 고함을 질러댔지만 응원 함성에 묻혀 버렸고 상가 유리벽에 부딪히는 응원객들도 많았다. 옷가게 점원인 박소윤(33)씨는 "사람들이 가게 입구까지 차고 들어와 손님이 못 오는 것은 둘째치고 가게 유리가 깨질까봐 노심초사했다"고 말했다.
절도와 성추행 사건도 잇따랐다. 김모(19·여·수성구 중동)씨는 "응원이 끝나고 친구들과 술집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지갑이 없어졌다"고 했고 안모(24·여·수성구 황금동)씨는 "응원을 하는데 뒤에서 누가 끌어 안더라. 나갈 수도 없고 경기내내 신경이 쓰였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거리응원 인파에 대비한 통로 확보와 경찰력 배치에 힘쓴 서울과 달리 대구 동성로에 나온 시민들은 시와 경찰 등 지원기관들의 준비부족으로 큰 불편을 겪었다.
이지현(26)씨는 "응원 내내 압사 사고가 날까 두려웠다"며 "3만 인파가 한꺼번에 몰렸는데 안전펜스 하나 없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시민불편과 안전 응원에 대한 문제점이 불거지자 경찰은 대구시에 동성로 거리응원전 취소를 요구했다.
대구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아르헨티나전에 더 많은 인원이 몰릴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성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거리응원을 펼쳐 달라고 대구시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경찰의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변성학(22)씨는 "관리가 힘들다고 응원 장소를 없애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나 2.28 공원 등 제 3의 응원 장소 마련부터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대구시는 "시민들의 월드컵 열기를 고려할 때 동성로 거리응원을 취소하기가 어렵다"며 "대신 응원 편의를 위해 안전 시설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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