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칼럼] 스포츠 민족주의의 새로운 시선

역사적으로 스포츠는 민족주의와 늘 맥을 같이 해 왔다. 이는 두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스포츠를 통한 애국심의 발로라고 하는 구조기능주의적인 측면과 정권획득과정의 정당성이 취약한 정치권력에 의해 스포츠를 도구화한 갈등론적 입장이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를 어느 나라 국민보다 다양하게 경험한 민족이다.

스포츠가 민족주의의 한 형태인 파시즘적 성향으로 전개된 대표적인 경우는 1936년의 베를린올림픽대회였다. 이 올림픽은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대회이나, 대회 자체는 정치적으로 철저히 무장된 독재정권의 전시품이었다. 즉 베를린올림픽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히틀러의 야심에 의해 사상 최대의 인원과 시설, 최고의 기술 등이 동원되었으나, 정치권력이 스포츠를 매개로 하여 민족주의의 선전, 인종차별, 정치권력의 부도덕성 등을 은폐하려 한 선전도구의 장이었다.

파시즘적 민족주의 스포츠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적 상황이 아니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스포츠를 통한 국민통합은 간과할 수 없는 정책노선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국내에서는 체육교육의 활성화, 국제 스포츠경기에서는 우수한 성적 등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과 민족적 자긍심이라고 하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고양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이러한 점에 있어서 더욱 적극적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 정권이 학교체육을 기반으로 한 엘리트 스포츠정책을 추진했다면, 전두환 정권은 야구, 축구, 씨름 등 프로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의 유치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시각도 전두환 정권의 스포츠정책을 파시즘적 민족주의로 보는 근거이다.

스포츠 민족주의는 구국적 차원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장르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 독일의 얀(Friedrich. L. Jahn)이 시도한 투르넨(Turnen)운동을 들 수 있다. 얀은 프랑스와의 예나전투에서 패망한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 체조운동을 통하여 독일의 자유와 청년들의 강한 연대의식을 고취시키고,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 운동을 펼쳤다. 이와 함께 중국이 미국과의 평화협정, 즉 '상하이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외교사의 중대사건 '핑퐁외교'도 구국적 민족주의 스포츠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 중국, 미국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한 돌파구를 스포츠에서 찾은 것이다.

최근에는 문화적 민족주의가 스포츠 민족주의를 설명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신의 문화적 동질성을 보존, 전승, 창조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인 '열린' 민족주의 성향이 스포츠세계에서도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 붉은 악마의 응원에서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열광적인 응원과 질서정연함의 조화로써 응원문화의 새로운 장르, 즉 문화적 민족주의의 이념을 심었다. 일본의 국가대표 서포터스가 일장기와 국가(國歌)를 멀리하면서 민족주의 성향을 약화시킨 것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악마는 개별성과 개방성, 해방적 성향을 표출시키면서도 태극기와 애국가를 중심으로 뭉쳤던 것이다.

문화적 민족주의 스포츠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 후 모습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국가와 개인은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입장이 그들의 태도에서 비춰지며,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올해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경기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 못지않게 메달도전에 실패한 동료들을 위로하고 도전 자체를 즐기며, 2등의 눈물이 즐거운 세레모니로 탈바꿈 되고 있다. 전형적인 민족 이데올로기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롭고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적 흐름이 스포츠계에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현장에서 생성되는 경이로운 기록, 현란한 기량 등과 함께 스포츠에서 발현되는 민족주의는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예외 없이 우리는 그러한 광경을 보고 있다.

김동규·영남대 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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