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晉)나라 때 위과라는 장수의 아버지에게는 애첩이 있었다. 아버지는 자기가 죽으면 첩을 좋은 곳으로 개가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는 첩도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아버지가 죽자 위과는 첩을 개가시켜 주었다. 병이 깊으면 정신도 혼미해지니 아직 정신이 맑았을 때 한 유언을 따르는 게 맞다는 생각에서였다. 진(秦)과 힘겨운 전쟁을 하던 위과는 적장이 묶어놓은 풀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손쉽게 사로잡았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노인이 나타났다. '나는 당신이 다시 시집보내 준 여자의 아비입니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풀을 묶어 놓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유래다.
목숨을 던져 은혜를 갚은 치악산 까치의 이야기를 비롯해 우리 전설과 민담에는 보은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겐 의리가 소중한 삶의 덕목이었다. 특히 남자에게 의리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고 의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나누며 살아야 했던 어려운 시절의 지혜였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외국의 참전 용사들이 베푼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국가보훈처도 참전 용사와 유가족을 초청, 격전지와 한국의 명소를 둘러보게 한다. 참전 당시 스무 살 안팎에서 어느덧 백발로 변해버린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의 얼굴만큼이나 확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다.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던,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라가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뀐 데 놀라고 있다.
민간기업이나 종교단체 등의 보은 행사도 적잖다. 월급을 쪼개 참전 용사의 손자 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기업도 있고 국내외에서 참전 용사 초청행사를 가지는 단체도 있다. 60년 전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월간지는 최근 발간된 두 권의 책을 소개했다. 중공군의 참전 이후 한국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뿌리친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와 참전국의 기념비와 전투 비화를 담은 책이다. '우리는 곤경에 처한 친구를 버리는 나라가 아니다'고 한 트루먼의 이야기를 소개한 저자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조직과 나라가 잘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보은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일이다.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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