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는 남자들 사이에 술자리에서든 직장에서든 어딜 가나 군대 이야기가 단골 소재로 빠지지 않는다. 병역과 관련한 문제가 정치,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여 생각이 다른 사람 간에 핏대를 올리게 하고 국가대사가 걸린 대통령선거에서조차 그 결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군대 이야기가 어딜 가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는 고생스러웠던 경험일수록 시간이 지나면 묘하게 더욱더 강한 추억으로 자리 잡는 인간 뇌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 복무가 삶의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 후에도 알게 모르게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힘든 병영생활을 이겨낸 데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은연중에 작용하기 때문에 그러할 수도 있다.
국민개병제(皆兵制) 하에서 병역이라는 것은 국가가 국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에게 강제로 부과하는 의무이다. 얼마 전 EBS의 한 여자 강사가 군 복무에 대한 폄훼 발언을 하여 곤욕을 치른 사건이 있었지만 세상에 국가 간 대립과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한 국가의 존립을 위해 국방과 병역은 필수적이다. 국방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시장에서 사고파는 사적재가 아니라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재는 항상 공짜를 누리는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다. 만약 내가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편법으로 면제받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입대하여 나라를 지키는 한 국가는 나의 생명과 재산을 군말 없이 착하게 지켜준다. 그러니 누구나 현역 복무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이익이 된다. 막말로 "군대 가고 싶어 가는 놈 있나? 빠질 능력이 없어 가지"라는 말이 일리 없는 말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이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얼마일까? 그것은 군복무의 기회비용, 즉 군 복무로 인해 상실되는 경제적 수입이다. 물론 병영생활의 고생스러움, 그리고 군 복무 중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면 그것도 포함돼야 하지만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가 곤란하므로 여기서는 빼기로 한다. 만약 연평균 소득이 3천만 원인 사람이 현역병으로 입대하였다면 지금은 의무복무 기간이 24개월이므로 6천만 원이 될 것이고 1억 원인 사람이라면 2억 원이 될 것이다. 이것을 조세로 본다면 실로 엄청난 세금을 낸 것과 같다. 이에 더하여 군 복무로 인해 승진과 결혼, 그리고 출산 등이 늦어지므로 이에 따른 추가적인 손실 또한 만만치 않다.
현행 징병제는 지킬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만큼 군복무에 따른 기회비용이 클 것이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 원칙 측면에서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군 복무는 묘한 특성이 있다. 그것은 기회비용이 수십억, 수백억 원인 사람이나 기회비용이 전무한 사람이나 제공하는 역무의 질, 즉 전투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벌이나 실업자가 입대하더라도 국민에게 제공되는 국방의 질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경제 차원에서 본다면 아주 비효율적이다.
국방의 원가는 단순히 정부의 국방 예산만이 아니다. 국방의 실질원가는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의 기회비용을 합쳐야 하지만 그런 통계는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본다면 6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방원가는 훨씬 막대하며 이는 경제발전과 국민소득의 증가에 비례하여 계속 증가한다.
통일이 되거나 남북 간 평화구도가 정착되어 지금과 같은 대군의 유지가 필요 없으면 좋겠지만 그 전에는 항상 전쟁 억지력을 담보하고 전쟁 발발시 즉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대규모 상비병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회비용이 큰 사람은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세금을 내고 기회비용이 작은 사람은 지원하여 직업적으로 장기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엄청나게 커질 뿐 아니라 국방의 질 또한 향상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보면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募兵制)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최근 남북 간 긴장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다소 한가하게 비쳐질 수 있으나 오히려 그럴수록 장기적인 국가적 과제로 더욱더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승도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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