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을 상실한 시기에 지식인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민족적 자존을 바로 세우는데 앞장서야 함에도 일제강점기 때에 많은 지식인들은 그리하지 못했다.
인천에서 3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활란(1899~1970)의 이름은 어릴 적 감리교에 입학하면서 세례명인 헬렌(Helen)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본명은 김기득(金己得). 이화학당 대학부 시절 제3대 메이퀸에 뽑혔고 졸업논문을 우리말과 영어로 강연을 할 정도로 똑똑했었다. 1922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기독학생대회에 참가했다가 귀국하지 않고 바로 미국유학을 떠났고 1926년 박사과정 중 돌아와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이 당시 그는 단발머리에 남바위를 쓰고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채 구두를 신고 다녀 사람들이 조롱해도 아랑곳 않아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1930년 다시 도미,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박사가 됐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일제의 전쟁지원을 선동하는 활동과 민족말살정책인 신사참배 및 징병을 권유하는 강연을 해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후사정이 어찌됐는지는 몰라도 1963년 오늘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과거와 현재의 공과(功過)가 다르다 해도 혹여 상 본래의 취지가 흐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든다.
우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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