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기진의 육상 이야기] 올림픽 마라톤의 우승자

올림픽 마라톤의 우승자는 국가의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아테네의 양치기 청년 스피리돈 루이스(Spyridon Louis)는 마라톤에서 우승, 올림픽 개최국 그리스의 자긍심을 세우며 영웅이 됐다. 이때부터 마라톤은 국가를 상징하는 올림픽의 대표 종목으로 등장했다. 당시 6만 관중은 열광했고 게오르그(Georg) 왕의 세 아들은 왕실규범을 어기고 관중석 밖으로까지 뛰어나가 그를 헹가래쳤다. 제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시상식 직전에 경기 진행 차량에 탔던 부정행위를 고백한 미국의 프레드 로츠(Fred Lorz)가 실격되고 토마스 힉스(Thomas Hicks)가 역대 최저기록인 3시간28분53초로 우승했다. 그러나 힉스 역시 올림픽 사상 최초로 경기 도중 트레이너가 준 근육강화제 스트리키니네 주사를 두 번이나 맞고 피로를 잊기 위해 독한 코냑을 마셨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에서는 심판들의 부축을 받고 먼저 골인한 이탈리아의 도란도 피에트리(Dorando Pietri)가 실격되면서 미국의 존 하예스(John Hayes)가 우승했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장거리(5,000m, 10,000m, 크로스컨트리) 3관왕이었던 핀란드의 한네스 콜레마이넨(Hannes Kolehmainen)이 1위로 골인했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29분20초의 올림픽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남겼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체코의 에밀 자토펙(Emil Zatopek)이 2시간23분04초의 경이적 기록을 수립하였으며 5,000m와 10,000m를 한꺼번에 우승, '인간 기관차'로 불리었다. 그는 혀를 앞으로 쭉 내미는 특유의 호흡법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에티오피아 왕궁 근위병 '맨발의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가 당시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한데 이어 4년 후 도쿄 대회에서도 불과 6주전 맹장염 수술을 받고 우승,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3연패에 도전한 아베베와 함께 출전한 에티오피아의 마모 월데(Mamo Wolde)가 우승했다. 에티오피아는 이로써 올림픽 마라톤을 3연패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아베베는 그 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으나 1970년 노르웨이 장애인올림픽의 양궁선수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어 세계인을 또 다시 놀라게 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예일대학과 플로리다대학을 졸업한 법학도 프랭크 쇼터(Frank Shorter)가 우승, 당시 미국 중산층의 마라톤 붐을 일으켰다. 1976년 몬트리올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동독의 발데마르 키에르핀스키(Waldemar Cierpinski)가 모두 1위로 골인, 2번째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38세의 포르투갈의 카를로스 로페즈(Carlos Lopes)가 우승해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이탈리아의 젤린도 보르딘(Gelindo Bordin)이 우승했다. 황영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지막 구간인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제침으로서 66년 전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의 한을 풀었다.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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