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도 성장의 주축이 됐던 디트로이트와 클리블랜드. 버펄로와 피츠버그.
20C 유럽을 밀치고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 성장의 배경에는 오대호와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형성된 이들 제조업 도시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산업 구조 재편으로 공장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러스트 벨트(Rust Belt)'란 오명을 가진 도시들이 됐다.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한 서부 해안과 오스틴을 기반으로 한 남부 지역, 첨단 사업을 유치하면서 부활한 동부 해안 지역과 달리 이들 도시들은 지난 30여년 간 끝없는 추락을 이어오고 있는 것.
하지만 '러스트 벨트'의 끝자락인 피츠버그가 달라지고 있다. 올해 초 G20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신성장 도시로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모키 도시로 불리던 피츠버그
전례없는 폭염이 이어진 7월 말 찾은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 '철의 왕국'이란 명성과 함께 한때 미국내 최악의 오염 도시였지만 거리는 상큼했다. 잘 정돈된 가수로와 조경, 도심 곳곳에 조성해 놓은 소공원과 분수대. 날씨는 무더웠지만 눈은 더없이 시원했다.
학생들과 함께 도심 현장 교육에 나선 지리 교사인 에머린 씨는 "이제 피츠버그는 미국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한 곳이 됐다"며 "올해 초 G20정상회담 이후 도심이 더욱 깨끗해졌다"고 말했다.
여름 휴가철이지만 북적이는 도심에는 관광객을 가득 실은 수륙양용차 덕(DUCK)이 오가며 더욱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피츠버그는 '절망의 도시'였다.
1875년 앤드류 카네기가 세운 철강 공장을 비롯해 1천여 개의 공장이 밀집하면서 미국내 최대 제조업 도시로 성장했지만 1970년대 이후 미 철강 산업의 퇴조로 위기를 맞게 된 탓이다.
공장은 문을 닫고 제조업 고용률이 40%나 급감하면서 70만명에 육박했던 인구가 3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로인해 미국내 도시 순위도 10위권에서 40위권 밖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젊은층이 사라지면서 1990년대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7,4%(미국 평균 12.3%)를 기록하며 가장 늙은 도시가 돼 버렸다.
미국내 철강 소비량의 절반을, 유리 및 비철 제품의 30%를 생산하던 도시가 공장들이 배출한 오염물질로 '스모키 시티'란 오명만 남긴채 신음하는 도시가 된 것.
◆피츠버그 재기의 배경은
위기의 피츠버그가 택한 전략은 바로 산업 구조 재편.
시 정부는 1970년대부터 지역 대학 연구소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고 민간 단체와 대학들도 협력체를 구성해 도심 재건에 나섰다. 이 결과 사업체들이 하나둘 피츠버그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제조업 공장이 빠져나간 자리를 컴퓨터공학, 바이오의학, 교육, 관광 등의 산업이 메우면서 '그린 도시'로 변신하는데 기반이 된 것.
피츠버그 상공회의소 조딘 메르시 씨는 "현재 피츠버그에는 10억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는 100여개 기업들과 300개의 외국 기업이 있다"며 "1980년대 도시 인구의 10%가 철강 산업에 종사했지만 이제는 1%에 머물 정도로 산업 재편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피츠버그 변신에서 주목할 점은 '대학의 역할'.
피츠버그에는 카네기 멜론대학과 피츠버그 대학 등 35개의 대학들이 밀집해 있다. 시 당국은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인프라를 성장 동력으로 삼았고 이 결과 대학과 연계된 로보틱스, 첨단의료기술 등이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대학은 고용 창출에서도 톡톡한 효과를 내고 있다. 대학 관련 연구소만 100여 곳이 있고 고용된 연구 인력이 7만명에 이르고 있다. 대학을 기반으로 성장한 정보 통신 분야에 1천600여 개의 기업에서 3만2천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피츠버그 대학 병원에만 2008년 기준 4만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피츠버그 대학에는 1만명이 근무하고 있다.
의료·생명 분야는 1980년대 이후 규모가 커지면서 지난 30년간 10만여 개를 넘는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서브 모기지 사태와 금융위기 여파로 미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인 10%를 넘고 인근 미시건 주 실업률이 14%에 이르지만 산업 다각화에 나선 피츠버그는 8%대의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피츠버그 재도약에는 민간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쇠락하는 도시 재건을 위해 1970년대 이후 민관협동단체(Public-private partnership)가 구성돼 철강산업의 쇠퇴로 버려진 도심 재개발에 나섰다. 이들은 역사적 건축물의 보전과 경기장 및 컨벤션 센터 건립에 나섰으며 대기오염 배출 제한, 공원관리 등 친환경 도심 공간 조성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피츠버그는 1980년대 제조업 부문 고용률의 급감에도 시 전체 고용은 7% 정도 감소하며 위기를 넘기는데 성공했다.
영남대 한동근 경제금융학부 교수(미 볼 주립대 연구교수)는 "전통 제조업인 철강으로 성장한 피츠버그는 섬유 도시였던 대구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교육 기반 도시"라며 "피츠버그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대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도시"라고 설명했다.
◆살고 싶은 도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정상회담에 앞서 "피츠버그는 차세대 에너지와 생명과학 산업을 선도하여 21세기 경제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롤 모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너진 '철의 도시' 피츠버그가 G20정상회담을 유치할 수 있었던 배경은 미리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도시 몰락의 위기를 극복 한 때문이다.
피츠버그는 2008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살기 좋은 도시 '13위로 꼽혔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선정했다. 전통 제도업 도시지만 도시환경과 직장, 범죄, 교통, 교육, 의료, 기후 등 삶의 기본 조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때문이다.
G20정상회의가 열린 '데이비드 L. 로런스 컨벤션센터'는 피츠버그의 변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4층 높이의 대형 유람선을 본 딴 건물 벽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자연채광을 통한 실내의 조명 공해'를 줄이는 등 환경친화적인 설계와 에너지 효율성을 갖춘 미국 최초의 '그린 컨벤션센터'로 인정받고 있다.
컨센션센터 제이미 허클베리 씨는 "그린 컨벤션센터는 녹색성장을 구현한 상징적 건물"이며 "G20 대회를 계기로 피츠버그는 철강 도시의 이미지를 버리고 녹색성장 도시로 확실한 이미지 변신을 했다"고 밝혔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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