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낭만·스릴 빠지기도 전에 몸은 파김치…MTB 체험

명봉산애서 라이딩을 즐기고 있는 최창희기자.
명봉산애서 라이딩을 즐기고 있는 최창희기자.

하늘이 높아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초입. 유난히 길었던 여름 탓에 아차 하는 순간 가을이 지나갈 것 같아 다급해진다. 이럴때 자전거를 타고 가을산의 매력에 푹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보도블로, 흙길, 돌길 등 어디든 거침없이 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고통을 참고 오르막을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정복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내려올 때 스피드와 스릴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특히 가을산은 짙은 녹음과 울긋불긋한 초목들로 뒤덮여 산악자전거를 즐기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장소로 변한다. 바퀴 2개를 벗삼아 덜컹거리는 산길을 누비다 보면 가을의 낭만은 물론 짜릿한 스릴까지 느낄 수 있다.

마침 이달 4일 산악자전거 모임인 '대구 영 MTB' 회원들이 명봉산 라이딩을 한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나섰다. 대구 북구 칠곡을 통과해 인근 명봉산을 오르는 코스다. 오후 3시 약속장소인 칠곡 대동교 인근에 가니 회원들이 벌써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복장들이 만만찮다. 고가로 보이는 산악자전거에 형형색색 화려한 옷과 쫄바지를 입은 동호인의 모습을 보니 '뭔가 잘못됐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 내리막 코스를 도는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모두의 후끈한 눈빛에 긴장감이 들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자전거를 꽤 타봤다는 자신감이 준비 소홀로 이어졌다.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많기 때문에 준비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회원 김경 씨의 말에 엉거주춤 몸을 풀기 시작했다. 출발 전 간단히 MTB 작동법을 배우고 안전 요령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드디어 출발. 생각보다 속도가 무척 빠르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따라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슬며시 긴장된다. 대동교를 출발한 7대의 자전거는 도로를 타고 명봉산 입구까지 내달렸다. 출발 전 기본적인 요령을 들었지만 달리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27단까지 나눠져 있는 기어 변속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MTB 전용바지와 신발을 미리 준비하지 않은 탓에 체육복 하의가 변속기어의 날카로운 톱날에 자꾸 찢겨 나가는 것도 신경에 거슬린다.

10여 분을 달려 드디어 명봉산 입구에 도착했다. 명봉산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코스여서 산악자전거의 묘미를 만끽하고 싶은 MTB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초입부터 좁은 산길과 오르막이 이어진다. 내딛는 페달마다 가쁜 숨이 이어지고 울퉁불퉁한 바닥에다 경사도 일정하지 않아 넘어지기도 일쑤다. 일반 자전거를 탈 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산을 오르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대신 추진력을 높이려고 저단기어로 변속했기 때문이다. 기어를 10단에서 3단으로 낮췄더니 열심히 페달을 밟아도 공중에서 헛발질 하는 느낌이다. 마치 물속을 걷는 기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인기척이 드물어지고 점차 짙은 녹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야가 트인 곳이 있는 반면 나무가 우거진 어두운 숲을 통과하기도 한다. 10분 남짓 달렸는데 벌써 아랫도리가 후들거렸다. 땀이 온몸으로 흘러내려 비 맞은 꼴이 됐다. 급기야 자전거에서 내려 끌기 시작했다. 초보인 기자가 걱정스러운지 회원들이 속도를 늦추며 기다려 준다. 그러나 한번 자전거에서 내리니 다시 타기 싫어진다.

'타고 끌고'를 반복한 끝에 한시간 쯤 지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회원 중 한 명이 가져온 냉수를 얻어마시니 페달을 밟느라 뜨거워진 몸이 서늘해진다. 그제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시원스레 부는 바람에 몸을 식히며 아래를 보니 산 아래로 펼쳐진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피로가 싹 달아난다. 힘든 주행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닐까. 지친 초보 기자와 달리 회원들이 막간을 이용해 땅에 발을 대지 않고 멈춰서는 '스탠딩'과 엉덩이를 안장 뒤로 쭉 빼고 무게 중심을 뒤쪽에 유지하는 '웨이트백' 기술 등을 선보인다. 기자 때문에 시간을 너무 빼앗긴 관계로 정상을 3.8㎞ 정도 남겨 두고 결국 하산을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니 편하겠지'하는 생각에 얼른 자전거에 올랐다. 그러나 내리막이 오르막보다 더 위험하다. 박홍석 회원은 "산악자전거 사고의 대부분이 내리막길에서 발생한다"고 주의를 줬다. 역시 울퉁불퉁한 길을 내려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려올 때의 무서운 스피드에 겁이 난다. 자꾸 몸이 공중에 붕 떠서 사고를 낼 것만 같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끄는 횟수가 산을 올라갈 때보다 더 많아 졌다.'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조심해야 한다'는 인생의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처음 목표했던 가을의 낭만과 스릴을 즐기기도 전에 파김치가 되어 버려 기대에 못 미친 MTB 체험이었다. 그러나 하산을 하고 나니 주제넘게도'해냈다'는 성취감에 '야호'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도 잠시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호회 회원들의 모습을 보니 살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일반 자전거에 비해 산악자전거는 쓰는 기술이나 장비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최소한 몇 달 정도는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조중경 회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조금 위안이 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는 성취감이 무엇보다 큰 산악자전거. 곳곳에 숨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르고 싶어하는 이유가 아닐까.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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