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법'(變法)이란 법규나 제도를 고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개혁이다. 중국 역사에서 대표적인 변법을 꼽으라면 진나라 상앙의 변법과 송나라 때 왕안석의 변법, 청 말기 광서제와 강유위'양계초 등 혁신파들의 무술(戊戌)변법이다. 변법은 성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상앙의 변법이 성공적이었다면 왕안석과 무술변법은 실패한 경우다. 사실 변법이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실패한 이유는 뭘까. 역사가들은 개혁 주도 세력의 실제적 역량의 크기와 개혁으로 인해 불이익을 입게 될 세력의 저항의 크기라는 방정식에서 답을 찾는다. 변법은 이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인재와 전략 등 혁신 주체의 핵심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개혁에 저항하는 수구 세력의 힘이 너무 크면 개혁은 물 건너간 일이다. 중국 역사에서 권력층 내부의 다툼으로 인해 변법이 좌절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왕안석의 신법은 신당-구당의 당파싸움을 촉발해 권력쟁탈전이 되고 말았다. 1898년 무술변법 또한 서태후와 수구파의 힘에 밀려 광서제가 유폐되고 한 줌밖에 되지 않던 혁신파들이 베이징 채소시장 입구에서 참살당하면서 103일 만에 막을 내렸다.
개혁의 실패는 후유증을 남긴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 조직에 변화라는 화두를 던져 당장은 아니지만 혁신의 토대를 만드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따라서 개혁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미적대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아 더 큰 화를 부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얼마 전 회의석상에서 간부 공무원들의 업무 자세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두 차례나 침수 피해를 입은 노곡동 사태를 언급하면서 "시스템이나 장비, 인력도 문제지만 제일 큰 문제는 공무원의 자세다" "간부 공무원들부터 정신을 안 차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방심하고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간부와 직원은 책임을 엄히 묻겠다"며 경고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해석하면 대구가 달라지려면 법규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김범일식 변법'이다.
김 시장이 시정 책임자로 선택받은 지도 벌써 5년째다. 여러 일들을 벌이고 매달렸지만 대형 현안들은 여전히 오리걸음이다. 동남권 국제공항 문제와 첨단의료복합단지, 대기업 유치, 취수원과 K-2 공군기지 이전, 도시고속도로 정체 해소 등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풀린 게 없다. 마치 1898년 6월 '정국시조'(定國是詔)를 필두로 변법이 좌절되기까지 100여 일간 광서제가 반포한 110여 개의 개혁 조치들처럼 장바구니만 비좁은 형국이다.
무술변법 당시 숨이 찰 정도의 갖가지 개혁 조치들은 혁신파들의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과제를 하나씩 실천하고 현장에 접목시킬 일선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담사동'유광제 등 혁신파들은 개혁을 밀어붙일 힘도 전략도 전혀 없는 백수공권이었고 서류 더미에 치여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다. 지금 대구시장이 그런 처지인지도 모른다. 시장의 쓴소리가 잦아지는 것은 그만큼 시정 상황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현안은 산적해 있지만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일선에서 발이 보이지 않아야 할 공무원들은 열중쉬어 자세다. 광서제처럼 개혁에 대한 김 시장의 신념과 의지는 분명해 보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리더십과 전략, 인재 등 핵심 역량이 달리면서 시정 개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타조는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모래에 처박고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아예 귀를 막고 그냥 넘겨버리는 습성을 갖고 있다.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것은 나쁜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자인 조지 로웨스타인은 투자자들의 행동양식에 빗대 이를 '타조 효과'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타조처럼 현실을 외면한다고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잠시 모면하기 위해 고통스럽지 않은 척 가장하고 계속 시간만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고통을 밟고 일어서지 않고는 개혁과 발전은 없다. 지금 대구에 '사람이 먼저 바뀌는 변법'이 절실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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