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시간의 의미

대구에서 분당을 가자면 성남행 고속버스를 탄다. 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해서 이동하기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한자리에 앉아 느긋함을 누릴 수 있어 그 편이 낫다. 자동차라는 공간에 갇혀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그 상황이 내게는 가장 안온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삶의 현장에서 격리된 시공간, 누구의 다그침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편안하다. 책을 읽거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만이다. 이럴 때 나는 사각통 안에 갇힌 그 구속을 맘껏 즐긴다.

시간을 유용하게 쓰자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초조감을 느낀다. 미국의 내과의사 래리 도시가 주장한 '시간병'에 나도 걸려들었는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강제된 상황이 아니면 두 손 놓고 편히 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래 위 가족들의 치다꺼리로 집안에서 하루가 짧던 시절, 담은 내게 구속의 상징이었다. 끊임없이 가슴에 일던 바람의 정체가 바깥 세상을 향한 갈망이었고 그로 해서 나는 끝없이 담 밖을 기웃거렸다. 그 담이 다 허물어진 지금, 나는 마음껏 자유로운가. 아니다. 행동반경이 넓어진 만치 인연의 그물은 더 촘촘해지고 시간은 더욱 나를 압박한다. 결국 구속의 주체는 담이 아니고 시간이라는 것을 요즘에 와서 확실하게 느낀다.

쉼없이 흘러가는 시간, 매번 접하는 순간순간이 일회성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초조하게 한다. 기실 따지고 보면 시간이란 영원에 닿아 있는 것이고 흐르고 변하고 낡아가는 것이 바로 생명 가진 우리 자신이 아닌가. 살아있는 것은 머물러 있지 않다. 끊임없이 변하고 또 소멸되어 간다. 그래서 시간은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다. 속도를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디지털 문화 시대에 이른 지금, 시간의 힘은 더더욱 드세어져 시간을 활용해야 할 사람이 시간에 휘둘려 돌아간다.

차창 밖에는 가을이라기엔 이르고 여름이라기엔 늦은 9월이 익어가고 있다. 저 푸른 것들이 작열하는 태양을 견디며 버티는 이유는 눈앞에 완성해야 할 가을이 있기 때문이다. 영글어 가는 열매는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다. 내일을 계획하는 것부터가 시간의 억압을 받는 일이라지만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생명이 있는가.

이런 단거리 여행은 지인과 함께해도 나쁘지 않지만 혼자가 더욱 좋다. 시간이라는 벅찬 상대와 아귀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흔치 않은 기회다. 잠시 누리는 자유다. 상상의 세계를 유영하며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의 해답도 발견하고 작은 틈새에서 희망을 찾으며 결국은 또 내일을 꿈꾼다. 그 꿈이 시간과 결탁하여 나를 압박할지라도 나는 꿈을 꾼다. 그것이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박헬레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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