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요리사가 미국 본토에 요리 도전장을 냈다. 요리 인생 40년인 대구요리학원 이숙련(63) 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
이 원장은 5년여간의 준비 끝에 미국 피츠버그에 1천㎡(300여 평)에 이르는 대형 식당 '시노비'를 열었다. 한국의 대표음식인 비빔밥, 불고기, 곰탕 등의 주메뉴에다 일본식 초밥인 스시도 곁들였다.
한식은 1인분에 13달러, 우리 돈으로 1만5천원가량 한다. 시노비는 문을 연지 두 달이 된 지금 미국인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아 버렸다. 피츠버그에 연고를 두고 있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박찬호도 이 식당을 찾을 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맛깔스런 우리 음식은 기본이며 특히 독특한 인테리어는 미국인들에게 이국적인 느낌을 줘 단골까지 생겨나고 있다. 석등, 미인도, 목조 수족관 등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간 작품들이 미국인들의 눈맛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VIP룸은 한국의 전통양식인 목조 창살로 만들어 미국인들에게 사진 촬영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원장의 아들 최경식(38) 씨도 미국 피츠버그에서 시노비의 역사를 쓰는데 큰 도움이 됐다. 최 씨는 범죄학 박사로 미국 브리지워터 매사추세츠 주립대(Bridge Water Massachusettes state college) 교수로 있으면서 직접 영양사, 위생사 자격증까지 따 시노비의 피츠버그 입성을 도맡았다.
◆오랜 꿈, 이뤄지다
대구 요리사의 피츠버그 입성은 작고 낡은 노트에서 시작됐다. 이 원장의 노트에는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40년 열망'이 담겨 있다. '작은 예절과 정성이 세계를 지배한다', '한국의 음식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날이 올 것이다' 등 세계를 향한 글귀들이 빼곡했다. "꿈은 누구나 원대하게 가질 수 있지만 실천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냉혹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장은 5년 전 요리 도전지로 서슴없이 세계의 중심 미국을 정했다. 더욱이 미국의 가난한 시골이 아닌, 대표적인 부자 도시 피츠버그가 이 원장의 정복지였다. 하지만 피츠버그 요리 입성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피츠버그는 이 원장과 아들에겐 베를린의 장벽보다도 높고, 견고했다고 한다. '생고생'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모자에게 안겨줬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한국처럼 잘 협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공사기간에 맞춰서 빨리 일을 진행해줘야 하는데 공사비만 많이 받고, 미적미적 늦춰 마음고생이 심했죠. 어쩌면 인종차별이 아니겠습니까. 또 공사비에 거품이 너무 많아서 공사대금을 두고 다툼도 많았습니다."
공사를 마칠 즈음 허가와 위생이 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미국만큼 허가와 위생 분야를 철저히 하는 나라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이 직접 나섰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입니다. 영양사, 위생사 자격증을 딴 것도 이 때문이죠. 특히 미국에서는 음식점 허가에 대한 절차상 하자나 위생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퇴출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물품들을 미국으로 가져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배를 통해 물건이 도착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일이 오래 걸리고, 해외 배송료만도 엄청났다. "시노비에 제대로 된 물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준 이하 물품들은 다시 한국에 보내는 시행착오도 거쳤죠."
이 원장은 피츠버그 입성 때가 요리 40년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인생 스무 고개를 혹독히 치른 셈입니다." 이 원장의 피츠버그 도전은 오랜 인생 역정의 산물인 것이다.
대구에서 평생 요리에만 몸담고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교도소를 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던 것이 피츠버그 입성 꿈을 이루는 데 큰 원동력이었다. 아들이 미국에서 범죄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것도 이 원장의 재소자 사랑의 연장으로 귀결됐다. "어머니의 봉사 활동을 보면서 자연스레 재소자들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 졌고, 범죄학이라는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죠."
이 원장은 "미국 식당 개업을 앞두고 특히 아들에게 미안했다. 학교 강의, 새벽 공사를 도맡아 하는 바람에 2주일간 잠을 제대로 못잤는데 내색조차 하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셰프를 꿈꾸다
벌써 대구 출신의 젊은 요리사들이 '시노비'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미국에서 생생한 현장 학습과 요리 연수 기회를 얻고 있는 것이다. 대구요리학원 출신의 최재훈(20·대구한의대 식품영양학과 1년) 씨는 시노비에서 미국 사회가 인정하는 한국인 셰프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또 최근에는 한 미국인이 "이 원장의 이름으로 다른 백화점이나 대형 몰에도 식당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제안해 왔다.
이 원장은 "이 제안이 성사되면 미국에서 제 2, 3의 시노비가 탄생하고, 한국인 셰프들이 일할 수 있는 장소가 그만큼 늘어 한식의 세계화에 대구가 그 중심에 서는 날이 머잖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음식은 소모품이나 다름없다. 옷은 한 벌을 사면 몇 년을 입을 수 있지만 음식은 매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하며 매출도 급신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원장은 미국 동부에서의 성공 신화를 쓸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다. 한국의 맛과 멋을 음식에 담아내기 위해 내년부터 대구의 젊은 요리사를 미국으로 보내 세계적인 셰프로 키울 계획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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