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도시 구미에 '생활연극'이 많이 퍼져서 기업체나 근로자, 시민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삶이 되도록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저희 부부의 10년 넘는 꿈입니다."
1996년 12월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형을 도와 일하러 들렀다가 지금까지 구미에 눌러앉게 됐다는 김장욱(49)·곽유순(48)씨는 베테랑 부부 연극인이다. 두 사람 모두 대학 때부터 연극을 했다. 대학졸업 뒤 부인 곽씨는 극단 '미추'에서 연극을 계속했지만 남편 김씨는 취업으로 그만뒀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피 속에는 연극이라는 공통 인자가 흐르고 있었다. 김씨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형님의 일을 돕기 위해 구미로 와서 하던 일을 3개월 만에 접었다. 그리고 홀로 연극활동하던 부인과 함께 연극인생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시절과 서울에서의 연극의 삶과는 또 다른 운명을 맞게 된 부부의 연극행로는 1997년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본격화됐다.
구미라는 공단도시의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된 이들 연극인 부부의 '연극의 대중화'라는 자신들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계기는 2000년10월5일 극단 '파피루스'를 창단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각각 극단 파피루스의 상임 연출자와 대표라는 역할을 맡은 이들은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구미에서 '연극과 기업문화를 접목하고' '생활속의 연극', '교육 연극'이라는 화두(話頭)로 '연극의 지평선 넓히기'라는 목표에 정열을 쏟았다.
빠듯한 재정문제로 1년에 두 차례만 갖는 정기 공연을 제외하고 새로 시도한 연극의 지평선 넓히기 사업은 구미의 한 대기업체와의 인연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2001년 자신들에게 연극 수업을 받았던 여고 3년 학생이 구미의 대기업체에 취업한 뒤, 마침 회사에서 사내 직원 대상 동아리 활동 지원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연극 부분에서 이들 부부가 지도를 맡게 된 것이다.
이들 부부의 연극지도와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 기업체에서는 이미 2개의 극단 창단과 1개의 사원 취미활동 지원 프로그램이 출범한데 이어 조만간 또 다른 연극단이 생긴다. 아울러 이 회사는 지난 2004년부터 해마다 4천여 명의 전 직원이 참여하는 사원 연수교육 때 이들 부부가 준비한 연극을 관람한 뒤 자신들이 직접 대본을 만들고 역할을 분담하는 등 자신들만의 10분 안팎의 짧은 연극도 공연했다. 참여팀은 10명 안팎으로 구성되며 공연은 보통 3월부터 12월까지 이뤄지는데 총 40차례(400개 팀)를 지도한다.
이 회사의 경우, 연극이 더 이상 '생소한 예술이거나 나와 상관없는 세계'가 아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예술'이 됐다. 아울러 이러한 연극을 통해 사원들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나 여러 갈등들을 해소하는 등 '치료적인 효과'도 보게 됐단다. 이들 부부는 '연극과 기업문화의 접목'을 통한 이런 '연극의 효과'를 바탕으로 '생활속의 연극'과 '교육 연극'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활동 영역을 더 넓혔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학교 학생들이나 결손 가정의 자녀 및 복지회관 어르신 등을 대상으로 하는 소위 '찾아가는 연극'이 그 방법이다.
이들 부부가 10년 넘는 구미에서의 연극 인생 중 보람 있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업체에서 발생하는 각종 안전사고를 주제로 한 연극 및 뮤지컬 공연이다.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사고예방의식을 높이는 효과를 이끌어내는 안전연극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모범 사례로 여러 기업체나 기관·단체에 소개되기도 했으며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개되는 연극으로 발전했다.
이달 5일 단원가족 15명과 함께 극단 파피루스 창단 10주년 행사를 조촐하게 가졌던 이들 부부는 또 다른 '꿈'을 실천하기 위한 '일'을 벌이고 있다. 구미시 원평동에 건물을 임대해 상설공연장 및 소극장을 꾸몄다. 그들의 꿈을 실현시킬 공간이다. 3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이달 중 선보일 이곳은 누구나 원하면 공연을 할 수 있는 '생활예술'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남편 김씨는 "이번 일뿐 아니라 지금까지 주로 일은 집사람이 '저질렀다"고 부인을 밉지 않게 흘겨본다. 부인 곽씨는 "'저지르고' 나니 다 해결 되더라"며 남편이 든든한 동반자이자 후원자임을 미소로 보여준다.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부부다.
열정적인 이들의 모습에서 연극과 함께 울고 웃으며 낯선 땅 구미에서 만들어가는 '생활속의 연극'이 연극의 저변확대와 대중화는 물론이고 공단도시 구미의 회색빛 이미지를 바꿔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느꼈다. 열정 하나로 구미에 생활연극의 꽃을 피우는 연극인 부부의 구미생활은 오늘도 해피타임이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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