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활기기들이 버튼 하나로 움직이는 시대다. 스마트폰은 물론 인터폰과 MP3 플레이어, 에어컨 조작까지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터치만 하면 스스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이를 두고 사회평론가들은 '터치(Touch) 시대'라고 부르며 '터치 만능'이 가져올 사회변화상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촉각에 의존하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이 같은 터치형 전자제품들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때문에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기술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스마트폰요? 그림의 떡이죠."
12일 오후 대구시 중구 남산동 시각장애인연합회 4층 컴퓨터실. 수강생 3명이 전원이 꺼진 검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열심히 더듬고 있었다.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 이들은 눈 대신 손으로 컴퓨터를 배운다. 자판을 누르자 컴퓨터가 이를 받아 목소리로 바꿨다. 시각장애인들은 끊임없이 기억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그래서 컴퓨터를 배울 때도 자판익히기부터 작업창을 열고 닫는 기능까지 모두 외워야 한다.
시각장애 1급인 황인철(32) 씨는 이곳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황 씨는 컴퓨터 자판을 가리키며 "시각장애인들이 컴퓨터 자판을 다 외우는 것은 엄청 힘든 일"이라며 "시각장애인들이 손가락을 조금만 잘못 대면 검색이 안 되는 터치폰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눈 대신 손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불편한 존재다. 스마트폰 뿐 아니라 터치형으로 바뀌고 있는 전자제품은 이들의 생활을 더 힘들게 한다. 이곳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는 시각장애인 J(53) 씨는 "요즘에는 전자레인지도 터치를 해야 사용할 수 있다. 휴대전화는 음성지원이라도 되지만 촉각으로 느낄 수 없는 터치형 제품은 우리에겐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언젠가 그들을 위한 기술이 나올 것이라며 희망을 품는 이들도 있다. 시각장애 2급 김계란(38·여) 씨는 "음성지원이 되니까 앞을 못 보는 우리가 컴퓨터를 배울 수 있지 않냐"며 "터치형 제품이 쏟아져도 앞으로 우리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리라 믿는다"고 웃었다.
◆'착한' 터치 기술 등장
시각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터치형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많지만 대부분 외국회사들이다. 애플사의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시각장애인인 오스틴 세라핀 씨는 지난 6월 자신의 블로그(http://behindthecurtain.us)에 "아이폰이 내 삶을 바꿨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아이폰은 문자 메시지 등 화면을 읽어주는 소프트웨어인 보이스 오버(VoiceOver)기능을 탑재했기때문이다. 세라핀 씨는 "스크린을 터치하는 횟수에 따라 음성으로 들을 수도, 다음 화면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며 "스크린를 터치하고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기능을 사용한 것은 앞을 볼 수 없는 내게 '혁명'이었다"고 고백했다.
착한 '앱(어플리케이션)'도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그린가 스튜디오스(GreenGar Studios)가 판매하는 '색깔 인식기(Color Identifier)'는 아이폰에 있는 카메라로 외부 색깔을 인식한 뒤 시각장애인에게 알려주는 앱이다.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이 알려준 색깔을 듣고 머릿속에서 새로운 색을 입힐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국내의 전자기기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약하다. 이때문에 한국에서도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드세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김명식 조사관은 "구매력이 있지만 사용할 수 없어서 시각장애인이 터치형 제품을 살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라며 "특히 스마트폰의 경우 국내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을 위한 기술적 배려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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