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생각을 물뿌리개처럼 뿜어내며
가을빛이 쏟아지는 길을 걸었다
나는 경사가 심한 길을 걸었고
심층의 나무뿌리가 구불거리는
흙의 기억도 넘어갔다
때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 재빨리 돌아서거나
놀라 그 자리에 멈췄다
아스라한 소실점 같은 기억 속
그들의 눈이 뿔처럼 빛났다
닳고 닳은 그림자를 빨아들이는 땅을
넋 놓고 보다 고개를 들었을 땐
생애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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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일어나다보니 아침 산책이라기에 무색합니다만, 집에서 가까운 초례봉 산자락 숲길을 거의 매일 한 시간 남짓씩 산책을 다닌 지 벌써 이태가 훌쩍 넘었습니다. 대구로 이사 오기 전에는 경산의 가장 큰 저수지인 문천지 주변을 걸었는데 그 호젓한 풍광의 산책길과는 달리, 초례봉 산길은 꽤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편이라 그게 약간은 불만입니다.
산길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재빨리 돌아서거나/ 놀라 그 자리에 멈추"곤 합니다. 가급적 사람 사이의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는데, 자연스레 '개인적 공간'의 확장이 일어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마주친 사람들의 "눈이 뿔처럼 빛났다"는 것은, 산길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깊어졌다는 것이겠지요. "심층의 나무뿌리가 구불거리는/ 흙의 기억"이라 할 만한 울울하고 웅숭깊은 자신만의 내면/상념에 빠져들어 있었기 때문에 말이지요. '산길 걷기'는 이렇듯 삶과 존재를 궁구하듯 들여다보는 것이어서 '시 쓰기'와 매우 닮았습니다. 아래쪽(땅)을 넋 놓고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땐/ 생애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 눈앞에 펼쳐"진 것을 보게 되는 것도 물론 빼놓을 수 없는 '닮은 꼴'이라 할 만하고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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