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은 총리가 되기 전 재무장관도 지냈다. 그러나 투자에는 초보자만도 못했다. 재무장관 퇴임 직후 빚까지 얻어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했으나 1929년의 주가 대폭락으로 집마저 경매에 내놓아야 할 만큼 빈털터리가 됐다. 이때 진 빚에 평생을 시달리다 80세가 넘어 노벨문학상을 받고서야 빚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9대조 할머니 사라 처칠(1660~1744)은 그렇지 않았다. 윈스턴 처칠의 직계 조상으로 유능한 장군이었던 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의 아내로, 수많은 피해자를 낸 '남해회사' 버블 사건때 최고점에서 주식을 팔아 10만 파운드(요즘 가치로 약 2천150억원)를 번 투기꾼이었다. 당시 런던 노동자의 1년 벌이가 12파운드 였다고 하니 얼마나 떼돈을 벌었는지 알 수 있다. 영국 최고의 명문가라고 하는 말버러 공작 가문도 그 시발은 장사꾼 집안과 다를 게 없었던 셈이다 아버지가 훗날 제임스 2세가 되는 요크 공작과 가까워지면서 사라는 처녀 시절 요크공작 가문에서 지냈다. 이때 요크 공작의 둘째 딸로 여왕이 되는 앤과 절친한 친구가 됐다. 이 인연으로 그녀는 영국 정치를 막후에서 조종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1744년 오늘 사망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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