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신시대 개막을 위한 충격 시나리오 전격 해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일의 역사를 명확히 정리하고,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새 시대를 열어가자'는 고언이다. 신시대를 열기 위해 책은 한·일 양국 간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불거졌던 갈등 내용을 비교 분석하면서 정리하고 있다.
일본을 지탱하는 국가 이데올로기는 신의 직계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천황'(우리나라에서는 일왕으로 부르지만 지은이는 일본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존중해 이 책에서 '천황'으로 쓰고 있어 이 기사에서도 그대로 쓴다)에 근거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던 것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군인들이 패배를 눈앞에 두고서도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던 것도, 무조건 항복을 알리는 천황의 '옥음방송'에 모두 총칼을 버리고 항복했던 것도 그들의 가슴에 천황의 존재가 깊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천황 없는 일본을 생각할 수 없으며 한·일 양국관계 개선 역시 천황을 배제하고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 한·일 간의 역사 규명과 관계 개선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사람은 일본 천황이다.(지은이는 이른바 '총대'를 메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은 2001년 12월 67세 생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781~806 재위)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501~523)의 자손이라는 것이 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연고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과 일본이 혈연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 천황가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임을 밝히는 자료들은 많다.
그러나 일본 지도층은 과거를 밝힐 의지가 없어 보인다. 지도층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가 '한국과 관련한 과거사에 관한 한 침묵'의 묵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85년 7월 일본 나라의 후지노키 고분 발굴 작업이 돌연 중단됐다. 당시 발굴단은 무덤을 폐쇄하는 이유에 대해 "공기를 너무 많이 쐬면 무덤이 파괴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미술사학자인 존 카터 코벨은 "그 고분에서 한국식 유물이 쏟아져 나오자 고분 주인이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한국이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일본의 초대에서 25대에 이르는 천황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일본인들에게 그리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은이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천황의 혈통을 공개하자고 주장한다. 일본이 그토록 숨기는 천황의 혈통을 과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재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1998년 6월호에 실은 '일본인의 뿌리'라는 논문에서 '현재 일본인은 유전학적으로나 골상학적으로나 한국 이민족의 후예임이 틀림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1997년 4월 아시아 4개국 분자유전학자들은 한국과 중국, 일본 중부지방의 본토인과 오키나와인,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등 모두 293명을 대상으로 미토콘드리아 디옥시리보핵산의 염기 서열을 분석한 결과, '현대 일본인은 2천 년 전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정착한 이주민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한국과 일본인의 유전적 거리는 영(0)이라고 할 만큼 유사성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결국 뿌리가 같고 동질적인 요소가 많다면 양국이 몇 가지 갈등을 이유로 언제까지나 철천지원수처럼 지낼 수는 없다. 더 이상 상대방의 상처를 덧내어 속 끓이게 할 것이 아니라 짚을 것은 짚고 풀 것은 풀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국제 정치 경제의 중심축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며 한·일 양국이 환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악연을 털고 미래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양국 관계의 책임은 일본 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한국 역시 양국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통큰 외교력을 발휘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서로 눈치 보거나 주저할 필요 없이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지은이 권오문은 세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기획실장,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은 책으로 '종교는 없다' '말 말 말' '전환기의 문화인식' '생각 나눔, 공감 그리고 행복' 등이 있다. 320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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