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현재의 도쿄)의 부엌이라고 불렸던 일본의 전통도시 가와고에(川越), 빈민가에서 문화중심도시로 거듭난 스페인의 라발, 폐탄광에 문화의 옷을 입힌 독일의 에센, 이야기가 있어 멋스러운 뉴욕의 첼시 등은 모두 역사와 문화를 담은 디자인으로 거듭난 도시다. 이 도시들은 재개발 바람으로 헐릴 위기에 처하거나, 낙후되어 천덕꾸러기 신세였지만 도시에 '전통과 역사'를 디자인해 입히면서 활력 넘치는 '오래된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 도시들이 재건이 아니라 복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힘은 관청의 리더십과 더불어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인 참여였다.
대구시 중구의 '구도심-향촌동, 포정동, 종로, 계산동, 성내동 등'은 그야말로 '역사적' 공간이다. 이 일대는 거대한 '테마 역사공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대구시와 대구시 중구청은 이 일대를 근대 역사와 문화예술의 공간, 골목의 거리, 걷고 싶은 거리, 꿈이 있는 나의 도심으로 보전하고 가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살거나 그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역사니 문화예술이니 걷고 싶은 골목이니 하는 말은 '뜬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린다.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문화니 역사니 예술이니 하는 게 뭐냐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면서 역사 문화 예술의 공간이 되는 일은 어렵다. 생계와 예술이라는 두 가치가 이른바 '적대적'으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양립하기 힘든 두 가치는 서로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화해와 협력 없이는 '생계'도 '문화예술'도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청 주도의 리더십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이해와 적극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도심재생문화재단(이사장 윤순영)과 (사)인문사회연구소(이사장 이강은)가 10월 9일부터 11월 13일까지 매주 토요일 '대구 도심의 역사' '대구 도심의 문화예술' '다른 주민과 만나다' '도심을 걷다' '나의 도시 나의 꿈'을 주제로 '주민리더역사문화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이 아카데미는 문화예술과 생계의 '소통'을 위한 작업인데 중구 주민들에게 역사 문화 자원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지역커뮤니티의 자발적 형성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 첫 작업으로 9일에는 '도심의 역사'를 주제로 이하석 시인(대구문화재단 이사), 예명해 교수(대구대학교 건축학과)를 초빙해 대구의 정체성과 도심의 미학, 대구읍성의 공간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 16일에는 '대구 도심의 문화예술'을 주제로 대구시 중구청 대강당에서 강좌가 열렸다. 이날 강좌에는 장옥관 시인(계명대 문예창작학과교수)의 '대구 도심과 문학'을 시작으로 권원순 미술평론가(계명문화대 명예교수)의 '대구 화단 형성과 그 작가들', 이동순 시인(영남대학교 국어국문과교수)의 '대중가요와 대구 실루엣' 강좌가 열렸다.
강좌를 듣기 위해 나이 지긋한 어른들부터 앳된 청년까지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우리 동네를 두고 예술이니 문화니 역사니 하는데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장옥관 교수는 "도심과 문학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조합이지만 도심에서 문학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골목이다"는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해 대구 도심과 관련된 문인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주민들에게 소개해 '생활 공간'이 어떻게 '문학의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들려주었다.
또 권원순 계명문화대 명예교수는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이상화 시인의 형인 이상정 작가, 서동진, 박명조 등 미술인의 삶을 통해 대구의 근대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주민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했다.
강좌는 오늘(23일)도 열렸다. '다른 주민과 만나다'라는 주제로 부산 또따또가 작가레지던시 지역 및 화명동 주민자치 사례지역을 방문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또 30일에는 '우리 도심 골목걷기', 11월 6일에는 '나의 도시, 나의 꿈', 11월 13일에는 '토론회 및 수료식' 등이 계획돼 있다. 주민들이 참여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사는 고장의 가치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을 알고 가꾸자'는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심재생문화재단과 (사)인문사회연구소는 이달 27일 '도심, 한옥에 말을 걸다'를 주제로 진골목 일대를 돌아보며 도심에 남아 있는 고택을 둘러보고 삶을 살아가는 주거공간으로서 도심 한옥의 가치와 보존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는 제5회 '도심재생문화포럼'을 가질 계획이다.
도심재생문화포럼은 올해 2월 4일 '기자의 눈으로 본 대구'를 시작으로 '골목 투어' '향촌동, 북성로 노상 대담' '도심, 일상의 거리예술'을 주제로 이미 열렸으며 11월에는 '도심, 주민의 삶과 만나다'를 주제로 도심 재생을 위한 타 도시의 우수 실천사례와 현재 진행 중인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프로그램 사업'도 살펴볼 계획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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