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온 지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1997년 홈플러스가 북구 칠성동에 대구점을 개점하면서 지역에서도 본격적으로 대형마트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 당시 대구점은 밀려드는 인파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장을 보기 위해 늘어선 차량들로 일대 교통이 마비됐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대형마트를 '쇼핑의 혁명'으로 받아들였고, 편리함과 가격파괴에 환호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 대구에서만 대형마트 19개 점포가 운영되면서 우리 사회에 다양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대한 블랙홀처럼 인근 상권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대형마트로 인해 지역상권은 붕괴됐고, 영세 자영업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한 곳에서 모든 쇼핑을 마칠 수 있다'는 편리함에 시민들이 앞다퉈 대형마트로 몰려가는 사이, 지역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시골 중소도시까지 대형마트가 세를 확장하면서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골목 상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은 것. 정모(51) 씨는 "이마트 만촌점이 들어서면서 초창기에는 가까운 곳에 마트가 생겨 기뻐했지만 이것이 결국에는 생활에 더 큰 불편을 가져오고 말았다"며 "인근의 소규모 슈퍼마켓들이 줄줄이 자취를 감추면서 이제는 간단한 라면 한 봉지, 우유 한 팩을 사기 위해서도 마트로 달려가 계산대의 긴 줄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편리함과 연중 할인가격이라는 이면에는 우리 경제를 절름발이로 만드는 '돈의 집중'이라는 문제가 숨어있다. 인근 수십 개의 골목상점 문을 닫게 해 서민들의 생계수단을 빼앗는다. 신규고용을 창출하기보다 비정규직 고용에 치우치고 있고, 청소·방범 등의 용역마저도 지역 업체가 아닌 외지 업체를 이용한다. 이 같은 유통 대기업들의 행태에 지역 경제는 고사 직전이다. 더구나 연간 1천5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본사가 있는 서울·수도권으로 고스란히 가져가면서 지역에서 돌아야 할 자금들이 속속 빠져나가기만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무분별한 SSM(기업형슈퍼마켓) 진출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7월 대구 달서구 상인동 대동시장 맞은편에 GS슈퍼가 들어서면서 상인들과 마찰을 벌였고, 8일 수성구 지산동 목련시장 입구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개점을 시도하면서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이마트 피자 판매 역시 온라인 상에서 큰 논란을 빚으며 연일 이슈화하고 있다.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은 5일 이마트가 최근 피자 판매에 나선 것과 관련, "법적 문제는 없지만 지나치게 기습적으로 판매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며 "대기업의 영역 확대가 너무 심해 국민적 정서에 반할 때에는 의원들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SSM의 진입을 막는 규제 법안은 몇 년째 국회에서 계류되고 있고, 그 사이 생계터전을 잃은 서민들은 저소득층으로 빠르게 전락하고 있다. 전통시장 시설현대화라는 명목으로 지난 8년 동안 1천60억여원이 투입됐지만 돈이라면 뭐든 하면서 공정한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대형마트의 횡포에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에 매일신문사는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을 통해 '대형마트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대형마트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그늘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참여사는 매일신문사를 비롯해 강원일보, 경남신문, 경인일보, 광주일보, 대전일보, 부산일보, 전북일보, 제주일보 등 9개사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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