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형마트를 암세포에 비유하곤 한다. 영양분을 주변 세포(지역경제)와 나누지 않고 혼자 먹는 탐욕을 가진데다, 자기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것(SSM·기업형슈퍼마켓)을 증식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덩치가 커지면서 결국 전체를 죽이는 것도 암세포와 닮았다. 대형마트 주변 재래상권은 몰락하고 자영업자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관계기사 13면)
◆"이대로는 못살겠다"=대구 중구 남산동 롯데슈퍼. 베이커리, 식육점, 분식 코너까지 갖추고 있다. 네 개의 계산대에는 물건을 계산하려는 손님들이 줄을 섰고 점원들의 손놀림도 분주하다. 이곳은 2007년 9월 11일 개점한 롯데마트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기업형 슈퍼마켓이다. 마트 주변에서 폐지를 모으고 있던 박순애(64·여) 씨는 "공터에 마트가 들어섰는데 마트가 들어온다는 얘기가 돈 뒤 쌀집과 슈퍼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수성구 지산동 목련시장 주변에 홈플러스 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개점을 실력저지하고 있는 목련시장 상인들도 연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조를 나눠 익스프레스의 기습 개점을 막기 위해 밤샘 보초를 선다. 이운석 목련시장 상인회장은 "SSM이 생기면 재래시장의 타격은 불가피하다"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상인들이 나서 익스프레스 간판을 달지 못하게 하는 등 앞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달서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김모(42) 씨는 대형마트에 밀려 두 번이나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2005년 북구에서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던 그는 가게 300m 인근에 대형마트가 입점하면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80만원의 가게 임대료를 내지도 못할 정도였다. 결국 달서구 상인동으로 옮겨 다시 가게를 시작했지만, 1년 뒤 인근에 기업형 슈퍼 마켓이 들어서는 바람에 다시 가게문을 닫았다. 김 씨는 "괜히 기업이겠냐? 영세 자본의 소상공인들은 제품의 질도 문제지만 가격에서 경쟁을 할 수가 없다. 하나가 들어오면 인근 주변 1km 상권이 초토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차별 증식하는 '유통공룡'=중소기업중앙회가 SSM 인근에 있는 전국 3천여 점포를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매출액은 48%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 보니 대구 도소매·음식업 종사자 수도 꾸준히 줄고 있다. 2004년 25만7천 명에서 2008년 21만7천 명으로 4만 명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롯데마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 이러한 3대 SSM의 매출액은 2006년 1조1천792억원에서 2009년 2조5천400억원으로 3년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이렇게 영세 상인들의 삶은 나락으로 내몰리고, 지역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대형마트들의 영업 확장은 무차별적이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새벽에 기습 영업을 하거나 기존 마트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들어가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동구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47) 사장은 두 달 전 부동산 업자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4억여원을 제시하며 팔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SSM이 개점을 위해 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던 것. 이 씨는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었지만 SSM이 동네까지 진출하면 상권이 붕괴될 것 같아 거절했다"고 털어놨다.
목련시장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개점도 무차별 영업 확장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곳 상인들은 "원래 그 자리에 마트가 영업을 하고 있었고 계약이 4개월이나 남았는데 높은 임대료를 제시한 홈플러스 탓에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쫓겨났다"고 전했다.
최극렬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장은 "정치권에서 SSM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사이에 SSM이 골목 상권에 광범위하게 진출할 수 있는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 됐다"며 "하루빨리 관련 법을 통과시켜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몇 년째 계류하던 두 개의 SSM 규제 관련 법안에 대해 국회는 10일 '유통법안'을 처리한 뒤 25일 '상생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유통법안'은 재래시장 반경 500m 안에 SSM 등록을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이고, '상생법안'은 가맹점형 SSM까지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켜 골목길 상권을 보호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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